한도리
N잡러
세 명이 한 가족, 섬에 살아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를 가장 좋아해요. 때로는 영화를, 소설을, 친구의 이야기를 걸어요.
걸어서 걸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임신 사실을 알고 3개월쯤 지난 뒤였다.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니 좀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한동안은 글자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초에는 내 생애 처음 겪어보는 (아마도 마지막일) 임신과 출산, 육아의 경험을 …
무풍지대
어느새 2025년 하반기의 첫 달도 후반에 접어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작심삼일은커녕 12월이라고 해서 한 해를 돌아보지도, 1월을 맞이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이루고 싶은 일이 없어서일까?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기 때문인 걸까? 매주 두 장씩 사보아도 결코 …
응원이 필요한 날
검색창에 '구름 레이더'를 적고 엔터 키를 눌렀다. 30분 단위로 시간을 설정하고 재생 버튼을 클릭하니, 수도권 두 세 곳에서 구름이 피어올라 순식간에 덩어리를 만들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동했다. 서울의 한낮 최고 기온은 37도까지 올라갔는데, 근대적 방식의 기상 관측이 이루어진 이래 …
이름 탐험
11개월쯤부터였다. 책을 읽어주면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아기가 그 작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휙휙 넘기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오른쪽 검지를 들어 그림을 하나 둘 가리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 그림이 나타내는 물체에 사람이 붙인 이름을 말해주었더니 다른 그림…
관찰의 효과
2017년 3월 4일 동아사이언스에 실린 윤병무 시인의 글에 따르면 ‘눈썰미’와 ‘안목’은 관찰력에서 기인하며, 이는 다시 “마음의 작동으로 동작”한다. 어딘가 나의 마음이 끌리는 곳에 관심과 눈길이 가고, 그러한 관찰의 결과가 사물을 묘사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사람 …
걱정여사의 딸로 태어났지만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티베트의 격언이자 어느 일본인 심리상담가의 책 제목이고, 사직동에서 오랜 시간 짜이를 팔고 있는 그 가게 앞 입간판에 적힌 글귀이기도 하다. 어느 영화의 "루이즈가 그러는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선 그저 마음 편히 먹고 흘러가게 두…
작심삼일
作心三日. 한자로 써놓으니 제법 그럴듯합니다. 글자 하나하나 생김이 귀엽기도 하고요. 새해라면 한국인이라면 분명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는 사자성어랄까요. 하지만 생애 처음으로 엄마의 삶을 맞닥뜨린 저에겐 작심삼일조차 없는 새해가 두 해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24시간, 1주일…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디트
한때 어떠한 무리의 관객은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 내 조명을 꺼두느냐, 본편 영상이 끝나자마자 환하게 불을 켜 관객이 퇴장하도록 하느냐를 기준으로 그 극장의 '격'을 따졌다. 소위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면 관객이 영화의 여운을 즐기고, 영화를 만든 모든 사람의 정…
조팝나무
봄이다, 드디어 봄이 왔다.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봄이 4월을 절반도 더 넘긴 뒤에야 도래하였다.삼월은 꼬옥 입을 앙다문 살구꽃 봉오리, 오월은 고개를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개한 작약 같다면 사월은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이제 막 고개를 내민 하얀 꽃잎이다. 우리 집 아기는 사월이라…
시간을 달리는 워킹맘
"인생은 마라톤이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으니 완급 조절을 하라든지, 매사에 꾸준하고 성실히 임하라든지, 인생에는 당연히 부침이 있겠으나 최후에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든지 하는 교훈 말이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