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오역)
"어느 곳을 향해서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몽테뉴의 명언, 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진짜일까?)
이 두 문장이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팰 때면, 나는 소설가 김중혁의 산문집 제목을 빌려 "뭐라도 되겠지"를 되뇐다. 사실 이 세 문장은 어딘가에서 서로 맞닿아있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못하기에 우물쭈물 뭐라도 하다 보면 뭐라도 될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마는 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오늘 밤도 한탄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엔 배를 타고 집에 왔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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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랄까 일명 N잡러랄까. 지난 10여 년을 여러 일, 시간, 장소를 얼기설기 엮어가며 살아가면서도 대체로 자의에 의해 거취를 정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왔다. 출산 후에도 육아를 하는 동안 모두에게 잊히지 않을까, 다시는 누구도 내게 일을 맡기지 않는 건 아닐까 부단히 걱정하던 마음과는 달리 할 일이 그럭저럭 끊이지 않았다. 마땅히 감사할 일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두는 활동을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시간을 좀 가져야지 다짐했었다. 최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던 일 중 하나를 정리하게 된 덕분이다. 이 참에 공부를 하든, 글을 쓰든, 밀린 영화를 보든, 늘어선 책등만으로 기분을 달래던 책을 읽든, 잔뜩 쌓아둔 짐 정리를 하든,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나누어 먹든 뭐라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퇴사를 결정한 다음 날 걸려온 전화에, 딱 하룻밤을 고민하고는 또 넙죽 일을 받고 말았다.
만약 내가 이 소중한 나날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어린이와 함께 보내는 데에 쓰겠다든지, 내년에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고 말 터이니 연구 주제를 구체화 하자든지, 뚜렷한 목표를 정했다면 이러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까? 대체 나는 왜 단단하지 못할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불안을 감수 혹은 투자할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는 걸까?
글쎄, 어차피 그럴듯한 무엇이 되지 못할 바에야 뭐라도 하자는 심보일지도 몰라.
갈매기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토록 늠름하게 앉아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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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기회는 몇 번 오지 않아. 지금이 기회란다."
"모두에게 보여 줘. 네가 최고란 걸. 할 수 있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영화에서 할머니가 손녀 혹은 손자에게 건넨 대사다. 만약 어린 시절 내게도 이 두 마디 말이 있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큰 무대에 서는 뮤지션이 되지는 않았더라도 후회나 아쉬움이 덜한 인생을 살았을 거다.
애정 어린 눈으로 나를 살펴 내가 가진 재능과 포부를 알아채고, 살면서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타인이 지금의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거나 그러지 않았는가를 논하기엔 나이가 꽤 들어버렸지만 아직도 아쉽다. 적어도 나 자신은 그렇게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늦은 후회를 해본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에게 하기란 도무지 쉽지 않은 말이잖아.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남아있다. 저 두 마디를 꼭 기억해 두자. 그리고 인생의 모든 첫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집 아기가 자라났을 때에 필요한 말을 건네도록 하자. 반려인에게도 공유를 해 둬야지, 나는 모든 걸 쉽게 잊고 있으니.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나 자신에게 한 번쯤은 말해줄 수 있다면 좋겠어.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니까.
동요 '자전거'의 가사처럼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은 안 나더라도, 분명 후회할 거야.

괄목상대할만한 어린이의 성장, 대체 나는 무얼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