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스무 살부터 지켜 온 나만의 작은 원칙이 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건 많고,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니 무언가 선택해야 할 때 스스로 기준을 두었다. 그건 바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 시절엔 교환학생, 사진 동아리, 대외 활동 등 대학생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온전히…
아이의 예쁜 말 기록 노트
아이 입에서 나오는 보석처럼 예쁜 말이 휘발되는 게 아쉬워, 6년 전부터 기록을 시작했다. 세 돌 무렵부터 아이의 순수한 언어를 받아 적는 습관은 나를 위로하고 치유했다. 비이성적이고 비효율적인 육아라는 세계에서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자유를 느꼈다. 아이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이름 탐험
11개월쯤부터였다. 책을 읽어주면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아기가 그 작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휙휙 넘기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오른쪽 검지를 들어 그림을 하나 둘 가리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 그림이 나타내는 물체에 사람이 붙인 이름을 말해주었더니 다른 그림…
발목을 붙잡는 손
한 달이 되어간다. 한국에 도착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시간은 빠르게 흐른 듯하지만, 그 속은 조용히 가라앉은 물처럼 무겁게 차 있었다. 머릿속엔 ‘머피의 법칙’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들,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어떤 법칙이라도 되…
아이 친구 엄마는 내 친구인가, 안 친구인가.
협소하다면 협소하고, 넓다면 넓었던 내 인간관계의 공통점은 최대한 개인 위주로 기분이 좋으면 만나고, 아니면 말고 식의 기분파 만남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야, 그거 누구 오는데? 걔 와? 나 그럼 갈래. 특정인을 만나기 위한(혹은 피하기 위한) 만남도 가능했다. "지금 되는 사람?""나…
나쁜 선택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스트리드가 작가가 되기 전 겪은 굵직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그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손만 뻗으면 닿는 선택들이 아니라 살면서 …
#23 프라하 육아일기 <삶의 변주를 시도하는 것 : 이탈리아 남부 여행>
잠 못드는 날들이 많았다. 커피를 끊기로 결심한 것은 의외로 단순한 이유였다. 새벽에 깨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데다 수면의 질이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더욱 피로해 커피에 의존하고 하루에 한 잔 먹던 것이 두잔이 되고, 세 잔이 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엔 심장이 빨리 뛰어서 …
조팝나무
봄이다, 드디어 봄이 왔다.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봄이 4월을 절반도 더 넘긴 뒤에야 도래하였다.삼월은 꼬옥 입을 앙다문 살구꽃 봉오리, 오월은 고개를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개한 작약 같다면 사월은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이제 막 고개를 내민 하얀 꽃잎이다. 우리 집 아기는 사월이라…
시간을 달리는 워킹맘
"인생은 마라톤이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으니 완급 조절을 하라든지, 매사에 꾸준하고 성실히 임하라든지, 인생에는 당연히 부침이 있겠으나 최후에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든지 하는 교훈 말이다. 하지…
버티는 힘
세상 일에 쉽게 미혹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바로 세운다는 오묘한 나이에 도달하기 몇 해 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내 선택으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결과는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렵고 책임은 평생 이어지는 일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어느덧 17개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