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힘

2025. 05. 12by한도리

세상 일에 쉽게 미혹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바로 세운다는 오묘한 나이에 도달하기 몇 해 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내 선택으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결과는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렵고 책임은 평생 이어지는 일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어느덧 17개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전과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정한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가 미간과 콧등 사이에서 맴돌 뿐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거나,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데 하나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 등 일상과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능력은 다소 감퇴하였으나 새로이 습득한 스킬도 몇 가지 있다. 

 

아기의 귀여움을 알아보는 능력, 정돈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소통하는 능력, 침대에서 몸을 재빨리 일으키는 능력, 구매할 물건을 비교적 빠르게 결정하는 능력까지 다양한 기술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능력을 꼽으라면 '버티는 힘'이다. 아기를 잉태한 순간부터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인내하고, 포기하고, 이겨내는 법을 다시 배웠다. 일상을 행복으로 여기고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버티는 힘을 키웠다.

 

 

엄마가 되면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꽤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본편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인스타그램에 짧은 영상이 여럿 올라와 몇 개나 보았다. 애순과 관식을 중심으로 2대 혹은 3대에 걸쳐 펼쳐지는 이야기인 듯한데 대사 몇 마디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소풍이었지. 내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기가 막힌 소풍이었지."

 

"맨날 이 시간에 나와 있어? 더 자고 싶지 않아?"

"아빠가 덜 자면 니들이 더 자고 살까 싶어서, 그럼 눈 떠져."

 

 

물론 나는 지금 함께 사는 아기 외에는 자식을 더 만날 계획이 없으며, 부지런하고 성실한 반려인 덕분에 아기보다 늦게 일어나는 날이 많다. 하지만 저 대사에 담긴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세상에는 직접 겪지 않고도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알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무슨 일이든 직접 해봐야 아는 사람이다. 하기야,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 보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겠다는 말을 쉽게 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엄마와 아빠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하면 아무래도 아빠다. 어릴 적 외갓집에 놀러 가면 동네 어른들께서 "아니, 정희 아니냐? 정말 똑같이 생겼네." 하셨지만 엄마와 나는 성격도 성향도 꽤 다른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본래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인지 아직도 엄마가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엄마와 똑 닮은 딸 (출처: 오마이뉴스)

 

 

내가 아기를 이렇게 사랑할 줄이야

 

열 달 동안 품어 세상에 내어놓은 아기라서, 내 모습을 닮은 내 아기니까 아끼고 사랑하는 게 아니다. 사실 우리 집 아기는 아빠의 외형을 똑 닮았다. 막 태어났을 때엔 젖을 빨고 잠을 자고 배설을 하는 최소한의 생존 활동조차 어려워하던 아기가 시간이 지나며 삶의 기술을 하나 둘 익히고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는 과정이 신기하고 기특하여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자그마한 발을 까딱까딱, 짤막한 검지로 원하는 걸 가리키고 간단한 단어를 따라 말하거나 책을 두 손으로 잡고 가슴 앞으로 내밀며 읽어달라 요구하는 아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 블록을 집어던지기에 바빴는데 몇 개를 연달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걸음마를 하지 않아 걱정했는데 어린이집에서 또래 친구들이 걷는 걸 보더니 드디어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그림책에 축구공이 등장하면 눈웃음을 지으며 축구공을 들고 와 건넨다. 걷다가 발 앞에 놓인 공을 살짝 차며 "바아알" 하고 속삭이는 건 또 얼마나 귀여운지. 때때로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주지를 않아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눈물 없는 울음을 우는 모습조차 재밌다. 철없는 엄마는 "어이구, 그럴 줄도 알아?" 하며 웃거나 "대체 왜 저래" 하며 살짝 눈을 흘긴다. 

 

 

오늘도 버티는 법을 배웠다

 

일이 바쁘고 쉴 틈이 없어도 아기가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버틴다. 내가 평생 헤어나지 못할 늪에 스스로 들어섰구나 발을 동동 구르며 1분 1초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신생아 시기와는 다른 의미에서다. 내가 시간과 관심을 쏟는 만큼 아기의 웃음을 마주할 수 있으니, 몸이 힘들어도 밤늦은 시간까지 일에 붙들려 있다 하더라도 버틴다. 육아도 일도 포기할 수 없으니 버틴다.

 

버티는 비결이 따로 있겠는가. 관식의 말처럼 내가 조금 더 고생을 하면 훗날 아기는 덜 고생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버티는 거다.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그러니 엄마는 지금도 우리 집에 올 때면 반찬 몇 가지라도 해와야 마음이 든든하고, 그러지 못하면 공연히 미안해하는 거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지만 그저 내 아기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버티는 힘을 익히고, 이해하는 마음을 배웠다.

 

 

수고했어요, 우리 모두.

한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