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같이 산지도 어느새 2년이 넘은 어린이, 요즘 울음이 줄었다.
사실 줄곧 우는 것만 아니라면, 그의 우는 얼굴을 보고 실없는 웃음이 종종 나오기도 했는데, (나의 엄마는 내 우는 얼굴이 귀여워서 일부러 울리기도 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그 일이 줄어들고 있는 거다.
대신 말이 늘었다.
"조아", "시여", "줘여(가 통하지 않을 땐) 주떼여", "아니", "아닌데" 등 의사표현을 점점 더 확실히 하기도 하고, 본인이 몹시 좋아하는 "빵빵", "츄록(트럭)", "뻐스", "토방탸(소방차)", "이요이요(주로 경찰차)"와 같은 단어나 "빨강", "루아(노랑)", "쭤럭(초록)", "펄렁(파랑)", "껑저(검정)" 등 색깔을 가리키는 단어를 좋아한다. 처음 말을 막 시작할 때엔 "음마", "아빠"가 아니면 동물의 울음소리를 따라 하기를 즐겼는데 아기의 취향도 점차 달라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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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와 며칠을 보낸 뒤에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대던 아기였다. 손가락 하나로 여기저기 가리키며 "어", "어" 하고 의사를 표현하려던 시절도 어느새 지나가고, 이제는 여러 단어를 조합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엄마를 놀려먹기까지 하려 하다니! 묻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답도 하고, 고집도 부린다. 어제는 저녁을 먹다가 손가락으로 음식을 만지작대며 장난을 치길래, "매너가 없네요." 했더니 "매너가 있네요~"라며 받아치더라.
이 녀석, 사람이 되어 가는구나.
이제 막 말문이 트여 신이 나 온종일 조잘대는 아기의 목소리가 참으로 기특하나, 이러다 내 청력이 약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어린이가 아직 자연스레 말하기에 익숙지 않아 온 힘을 주며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외치기 때문인데, 귀가 아프다는 내 말에 엄마는 대답한다. "넌 더 했어.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이거 모야, 이고 모야' 끝이 없었다고." 어, 엄마, 미안. 고생 많았어. 그래도 그때 나 참 귀여웠겠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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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고 온 이캉캉 어린이. 가기 전 문진표와 검사표를 작성하는데, 이전과 달리 반려인과 함께 작성해야만 했다. 지난 검사까지만 해도 내가 주양육자로서 캉캉이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캉캉이 아빠가 아기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내가 이 소중한 나날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있는 건 아닌지 문득 속이 상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 (아마도)
'한국 영유아 발달선별검사(22~23개월용)'에는 이러한 문항이 있다. "친숙한 사람이 아프거나 슬퍼하는 것 같으면, 다가와서 위로하려는 듯한 행동이나 말을 한다. (예: '호'하고 불어주기, '울지 마'라고 말하기)" 사회발달 정도를 측정하는 문항인 듯한데, 최근 캉캉이도 이러한 행동이 늘었다.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기가 엄마를 찾으며 울자 위로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들었다. 얼마 전에는 가지 부침을 먹으려다 떨어뜨리고 울상이 된 나를 보며, 캉캉이가 같이 울먹이는 표정을 지어 꽤나 놀라기도 했다.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면 "호 해줘" 하는데, 입김을 불어주면 "괜찮아"라며 금세 회복한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울음부터 터졌을 일인데, 상징적인 행위로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는 게 신기하다. 꽤 속상할 때면 발버둥을 치며 "엄마가 눈물 닦아조여"라고 말하는데, 처음에는 그 말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다가 깜짝 놀랐다. 눈물을 닦아달라고 조르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재밌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자라나려나?
일단 오늘 저녁도 신나게 보내보자!

한도리
N잡러
세 명이 한 가족, 섬에 살아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를 가장 좋아해요. 때로는 영화를, 소설을, 친구의 이야기를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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