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2025. 07. 22by오자히르

스무 살부터 지켜 온 나만의 작은 원칙이 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건 많고,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니 무언가 선택해야 할 때 스스로 기준을 두었다. 그건 바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 시절엔 교환학생, 사진 동아리, 대외 활동 등 대학생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온전히 누렸다. 청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니까. 직장에 다닐 때는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마케팅 업무를 7년간 마음껏 해보았다. 매일 야근해도 열심히 일한 뒤 얻는 성과와 인정, 뿌듯한 성취감이 좋았다. 그런데 엄마가 된 후 모든 게 180도 달라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루를 온전히 날 위해 쓰던 20대를.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던 직장 생활을. 노력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던 혼자만의 시간을. 삶의 중심이 아이가 되면서 나는 점차 희미해졌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를 살았다. 그래서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3차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한 날 기뻐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워킹맘으로서 회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매일 야근 후 9시 집으로 출근해 아이를 씻기고 재운 후 다시 노트북을 켰다. 시차 때문에 밤 10시에 해외 지사와 컨퍼런스 콜을 하기도 했다. 남편도 늦는 날엔 18개월 아이를 팔에 안고 재우며 이어폰으로 회의를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에 30분도 안 되니, 아이는 엄마가 집에 와도 모른 척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고 있지?'

 

나는 선택해야 했다. 스스로 솔직해져야 했다. 남이 아닌 나의 기준이 필요했다. 내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나는 편안하고 행복한지 끊임없이 물어보았다. 그리고 선택의 기준은 다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아이가 가장 예쁜 순간이자, 엄마로서 가장 행복한 때이다.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게 처음인 아이의 말과 행동에 기뻐하며 감탄할 시기이고, 이 소중한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지금을 꿈에서도 그리워할지 모른다. 회사에 다니느라 이 시기를 놓친다면 내 인생의 황금기를 놓쳐버릴 것 같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현재 프리랜서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시공간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번역 일을 사랑한다. 아이로 인해 변수가 생겨도 밤을 지새우면 되니까. 그럼에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30년 후의 나에게 물어본다. 미래의 나는 늘 이렇게 말해준다. 지금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아이의 옆이라고. 먼 훗날 지금 아이 모습을 무척 그리워할 거라고. 넌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상상 속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미래에 다녀오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선명해진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나와 남편은 아직 젊고 생기 있으며 건강한 두 발로 걸어 다닌다. 아침에 두 눈을 뜨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넘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할 뿐이다. 

 

마음에 자주 되새기는 단순한 진리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것이다. 워킹맘으로서 경력을 쌓다보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고, 집안일은 뒷전에, 몸과 마음의 건강도 잃기 쉽다. 두 가지 모두 잡으려 애쓰다 정작 소중한 것을 잃고 많이 후회했다. 세상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있다. 아이가 내 품 안에 있는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엇을 더 후회할까? 나와 가족, 건강을 돌보지 못한 채 열심히 일한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소중한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못한 것,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진짜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한 것을 더 후회할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조건 없이 듬뿍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유산이 있을까. 하교 후 아이와 함께 산책하며 하늘과 노을, 꽃, 나무, 바람에 감탄하는 순간이 너무 귀하다. 오직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그래서 오늘도 의도적으로 다짐하고 노력한다. 너무 바쁘지 않기를. 나와 소중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기를. 먼 목표 때문에 지금, 여기 행복을 놓치지 않기를. 

 

 


 

 

오 자히르

sarahbaek5@gmail.com 

www.instagram.com/sarahbaek

오자히르

번역가

단순한 삶 속에서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