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피> 외로운 섬
삶은 때때로 밀물처럼 쏟아지고, 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나는 그 물결 사이에서 흔들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섬과 같다.몽생미셸(Mont-Sa…
어버이날을 모르는 아이들과 보낸 5월 8일
프랑스의 5월 8일은 유럽 전승 기념일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한 것을 기념하며 휴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이 항복한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해 기념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휴일 답게 아이들은 느지막이 일어나 만화영화를 보았다. 우리집에선&n…
이불속 한 시간, 하루를 준비하는 은밀한 의식
아침 여섯 시.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집 안에는 이미 작은 움직임들이 일기 시작한다. 식탁 위엔 전날 밤 미리 준비해 둔 간식 반찬 통이 놓여 있고, 부엌에선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퍼진다.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한 손에 칫솔을 든 채 바닥에 …
《파란 물결, 고요히 흐르다》
《파란 물결, 고요히 흐르다》 푸른 심장은 오늘도 뛴다 대구의 하늘 아래, 함성은 잦아들고 타석 위의 희망은 공중에 흩날린다 우리는 믿었다, 다시 비상할 날을 승리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그 순간을 하지만 스코어보드는 냉정했고 구장은 적막에 젖었다&n…
이계절에 문득, 가족
엄마가 보내온 사진 속,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직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봄나물 이야기를 한다. 핸드폰 너머로 전해지는 계절의 기척에 마음이 자꾸만 흔들린다.5월, 올해는 꼭 한국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그동안 몇 해를 내리 9월에만 한국을 찾았다. 가을의 한국은 선선하고…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디트
한때 어떠한 무리의 관객은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 내 조명을 꺼두느냐, 본편 영상이 끝나자마자 환하게 불을 켜 관객이 퇴장하도록 하느냐를 기준으로 그 극장의 '격'을 따졌다. 소위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면 관객이 영화의 여운을 즐기고, 영화를 만든 모든 사람의 정…
조팝나무
봄이다, 드디어 봄이 왔다.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봄이 4월을 절반도 더 넘긴 뒤에야 도래하였다.삼월은 꼬옥 입을 앙다문 살구꽃 봉오리, 오월은 고개를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개한 작약 같다면 사월은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이제 막 고개를 내민 하얀 꽃잎이다. 우리 집 아기는 사월이라…
시간을 달리는 워킹맘
"인생은 마라톤이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으니 완급 조절을 하라든지, 매사에 꾸준하고 성실히 임하라든지, 인생에는 당연히 부침이 있겠으나 최후에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든지 하는 …
버티는 힘
세상 일에 쉽게 미혹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바로 세운다는 오묘한 나이에 도달하기 몇 해 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내 선택으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결과는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렵고 책임은 평생 이어지는 일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어느덧 17개월이…
오늘의 기분: 즐거움
(출처: IMDb) <이터널 선샤인>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남을 거다. 내게 육아로 서서히 잃어가는 기억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당신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운명 혹은 고집스…
휴직 첫 목표를 '건강'으로 한 건 정말 잘한 일
육아휴직에 들어가며 직장이라는 설국열차 밖으로 나간 이후, 처음으로 세운 휴직의 목표는 '몸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였어요. 멀리 복직 후를 바라보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니 '정말 이 시기에 체력을 최대한 확보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복직 후의 힘…
이렇게 사는 게 맞아?
아이가 중학생이 된지 꽉 채운 2개월이 지났다. 지난 3월부터 학원 스케줄이 더 바빠지면서 아이의 수면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 몹시 중요해졌다.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엔 9~11시간을 잤는데, 요즘은 7~9시간을 자고 평일 기준 평균 7시간 30분~8시간을 잔다. 학원 숙제가 많아서다.…
너는 알약 나는 물약
“생일 투우카함니다. 생일 투까합니다. 쨔랑하는 옴마의 생일 뚜까합니다.” 자주 꺼내 보는 영상 중 하나.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보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촛불을 끄다 못해 케이크 위로 침을 분사하는 장면은 수백 번 돌려 보아도 지루할 틈 없는 깔깔 버튼. 과…
마지막으로 두근거렸던 그날 그 순간
몰랑한 손이 부항과 혈침으로 벌집이 된 어깨를 토닥인다. “이러다 엄마가 죽을까 봐 걱정이야.”나는 꼬마를 꼭 안으며 스스로를 토닥인다. 내가 볼 수 없는 등짝을 가여워하는 마음이란. 내 심장에 제3의 눈이 생긴 것만 같다. 성악설 신봉자가 되었다가 끝끝내 성선설로 돌아서…
가장 크게 웃은 날
"미술관 오픈런이라니." 자고로 미술관은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유유자적 떠다녀야 제맛이거늘. 설렘의 핏기를 뺀 심드렁한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모처럼 볕이 좋은 토요일, 오전 10시의 청량함을 머금은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숙박비를 아끼려 전날 심야버스를 택한 리스크는 컸다. 옆자…
작심삼일
作心三日. 한자로 써놓으니 제법 그럴듯합니다. 글자 하나하나 생김이 귀엽기도 하고요. 새해라면 한국인이라면 분명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는 사자성어랄까요. 하지만 생애 처음으로 엄마의 삶을 맞닥뜨린 저에겐 작심삼일조차 없는 새해가 두 해째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