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해야 하는데 자꾸 아쉬웠다
LH 전세 임대가 됐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빨랐다. 먼저 신청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몇 달씩 기다리는 경우도 많았기에 나 역시 오랜 시간을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연락이 왔다. 주변에 소식을 전하자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그렇게 빨리 될 수가 없는데?" 처음에는…
안녕, 메가박스 영종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이전, 온종일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나의 숨통을 종종 틔우던 곳이 바로 극장이었다. 신생아를 돌보는 동안에는 유축을 하며 와이드 모니터로 그간 미뤄두었던 명작을 챙겨보았고, 반려인에게 아기를 맡겨두고 바깥 외출을 하게 되었을 즈음부터는 기회를 보아 극장에 …
The Beatles Get back
The Beatles Get back마지막으로 함께 음악을 만들던 순간,다큐멘터리 The Beatles: Get Back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역사적인 밴드는 실제로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을까?” 수많은 전설적인 음반…
이방인의 기쁨과 슬픔
아침이면 그리스, 이집트, 프랑스인과 함께 요가를 한다. 오후에는 미국, 브라질, 러시아인 엄마들과 아이들 플레이 데이트를 한다. 학교에서 아이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이스라엘과 중국, 미국과 브라질 혼혈인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어디를 가도 한국인은 우리 가족뿐이다. 낯선 나…
등원전쟁
표현하지는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을 감내하고 씩씩하게 지내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내와 맞벌이를 하느라 둘째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다행히 처음부터 별 탈 없이 잘 적응해 왔는데,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의 등하원을 전담하게 되면서부터 아이가 조금씩 떼를 쓰는 …
그녀가 돌아온 날
2026년 5월 28일 목요일우리는 쉽게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 사람으로 정의되지 않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긴 공백기를 깨고, 독립영화를 통해 복귀한 배우가 있다. 그녀의 복귀 소식에 기다리던 이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그리 길지 않은…
그리스인 조르바, 나로 살아갈 자유
푸른 에게해를 바라보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었다. 따사로운 봄날, 그리스 섬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며 여행지를 고르는 것만큼 천국에 데려다 놓는 기쁨은 없었다. 크레타를 선택한 건 조르바 때문이었다. 삶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직접 부딪히고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 오래전 책 속…
미드를 보다가 산후우울증을 생각했다
정들어 보는 미드 중 하나가 <버진 리버>다.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는 "배경은 <전원일기> 같지만 내용은 <위기의 주부들>이야!"라고 설명하는 시리즈다. 프랜차이즈 진입을 막는 규칙을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동네를 배경으로 여러 사람의…
🏜️ 사막 위의 음악, 그리고 지금 시대의 불안
🏜️ 사막 위의 음악, 그리고 지금 시대의 불안 🎡 2026 코첼라 랜선 후기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세계 최대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는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생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제 우리는 굳이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
포포포 와인이야기 : 와인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
전 세계 와인 관련 출판물 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책은 단연 일본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일 것이다. 1,500만 부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고, 연재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원작자인 아기 타다시 남매가 소문난 …
부끄러움
2026년 5월 11일 월요일나를 아주아주 부끄럽게 만드는 영화를 만났다. 마크 허만 감독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다.주인공 브루노는 나치 장교의 아들로, 여느 소년처럼 장난기 많고 탐험과 친구를 좋아한다. 아버지가 새로운 곳으로 발령받으면서 이사오게 된 곳에서 줄무늬 파자마를…
김철수
2026년 5월 9일 토요일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이재리, 차시윤 감독의 《관념의 남자 김철수》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주인공 철수가 등장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고 몇 해에 걸쳐 만나온 연인도 있다. 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어야 하나?
2026년 5월 7일 목요일70대의 여성이 보스 역할을 맡게 되었다며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바로 데이빗 프랭클 감독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이다. 전작의 배우들이 다시 모여 제작된 속편인만큼 추억을, 그때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큰 기대를 모았겠지만 시작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기대한 걸 말하지 않으면 서운함이 된다
뭔가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이상하게마음이 쳐져 있었다.괜히 누가 먼저 알아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갔다."왔어?""응.왔어."평소와 똑같은 말인데 다르게 들렸다.속으로 다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힘들어보이네 같은 말. 한마디 던졌다."이번주에 무리한건가.""…
목소리
2026년 5월 3일 일요일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정보가 주어졌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떤가? 그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 반응은 어떻게 변하는가?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의 사진을 보게 된다면 그때의 우리의 반응은…
지상의 양식
2026년 4월 30일 목요일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보는 어떤 것은, 다른 사람이 보면 달라진다. 같아질 수가 없다. '빨강'을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각자가 모두 다른 '빨강'을 떠올린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는 달게, 누군가는 짜게 느낀다. 우리는 같은 …
시몬스
2026년 4월 29일 수요일'소셜 비헤이비어' 사람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선택을 한다는 말이다. 같은 제목의 책을 쓴 김성준 작가는 social behaviour라는 단어를 생각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벗어난 범위의 욕망은 불가능하니 그저 욕망이라고 해도 될테…
그래도 괜찮은 건 없다
태아의 머리, 손, 발이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자니 덜컥 눈물이 차올랐다. 내게는 축복으로 다가온 이 생명의 증거가, 지구 반대편 남아공에 있는 S에게는 어떤 무게로 다가갔을까.남아공을 떠나고, 6개월 만에 열 살 차이 나는 남아공 흑인 친구를 줌에서 만났다. 이 친구는 왓츠앱으…
투명 인간이 된 남편
필리핀에 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Hello. mom."이다. 남아공에서는 "How are you? Ma'am."을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는 무조건 MOM이다. 쇼핑몰을 가든, 음식점을 가든 어떤 곳에 가도 먼저 건네 오는 인사가 '헬로 맘'이었기에 남편의 존재감에 스크래치가 나기…
위대한 침몰, 하찮은 침전
"여기 있는 누구나, 언젠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요?" 선배 하나와 친구 둘은 고개를 갸웃대거나 내저었다.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소원으로 '세계 평화'를 빈다거나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있다는 믿음이, 나는 누구에게나 언젠가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