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은 건 없다

2026. 04. 25byglowda

태아의 머리, 손, 발이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자니 덜컥 눈물이 차올랐다. 내게는 축복으로 다가온 이 생명의 증거가, 지구 반대편 남아공에 있는 S에게는 어떤 무게로 다가갔을까.


남아공을 떠나고, 6개월 만에 열 살 차이 나는 남아공 흑인 친구를 줌에서 만났다. 이 친구는 왓츠앱으로 연락을 하는데 보통 답이 3~4일 후에 오는 날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람 관계에서 이렇게 반응하면 싸움이 나거나 오해가 생길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S와 나는 이 문제로 싸운 적도 오해하거나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  전혀는 아니고, 초반 몇 번은 나랑 만나기 싫은가 연락하기 싫은가, 약속은 대체 왜 했나 오해했지만, 그게 습관의 문제라는 걸 알고는 어떤 핑계를 대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유형의 사람일 수 있겠다. 그냥 다 그렇게 하고 사나 보다 싶어 그러려니 하게 됐다. 덕분에 나는 이 친구와의 약속에서 만큼은 취소될 것 같은 타이밍을 맞추는 예지력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니 약속을 잡을 때는 흔쾌히 잡고, 캔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둔다. 원래도 그렇게 약속을 밥 먹듯이 깨는 친구지만, 최근에는 왜 약속을 번복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성사된 만남에서 듣게 된 이야기는,

아직 미혼인 30대인 남아공 흑인 친구가 계획에 없던 던 아이를 가졌고 이후, 남자친구와 헤어졌단다. 아이에 관해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더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랑했던 사람의 아이를 가졌고,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나는 그 아이를 빨리 만나 보고 싶고 엄마로서 몸을 잘 챙겨한다고 다독거렸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지만, 이미 그 안에 차오른 걱정과 설움의 눈물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저 지금 상황에 순응하는 S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이를 지울 수는 없고 잘 키워 낳을 건데, 아직 결혼 전이라 무섭고 떨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이 걱정된다고 했다. 9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는 아이를 빨리 갖고 싶다고,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20대의 청년이었다. 

 


남아공에 있을 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 S와 남아공의 일부다처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S 역시, 일부다처제의 가정에서 자란 친구로 흑인 아프리칸 문화는 너무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나는 큰일 날 일이라면서 펄쩍 뛰며 토론했던 때가 있었다. 

 

"네 남편이 이미 너 사이에 아이가 있는데 다른 곳에 가서 여자를 데리고 왔고, 그 여자가 낳은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어? 나는 가만 안 둬!" 

 

이렇게 말하는 나를 보면서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듯 "That's fine."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내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집에 엄마는 같지만 아빠가 다른 배다른 형제가 살고, 때로는 한 집에 엄마가 둘, 아빠는 한 명 아이들도 다 같이 말이다. 실제로 내가 알던 대부분의 흑인 친구들의 집안이 그랬고, 그들의 배다른 형제애도 큰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자랐고, 친구들도 그랬다고, 주변 청소년들이 아이를 갖고 낳는 일도 흔한 일이라며 일부다처제에 관한 부분은 놀랄 일이 아니랬다. 남자가 돈이 있어서 로볼라(신부 지참금)를 주고서라도 자기를 데려갈 수 있다면 일처제든 이 처제든 다처제든 무슨 상관이냐는 듯한 뉘앙스였다. 한국 사람으로서 어처구니없는 대사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며 조심스레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조차도, 막상 '사랑 없는 아이'를 품게 된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당연함'이라는 이름 아래 홀로 떨고 있었다. 나는 S의 힘 빠진 핼쑥한 얼굴을 보면서 당장 아프리카로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문화가 그렇다고 해도,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누군가의 당혹스럽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원래 그런 거야. 그러니 이겨내. 지나갈 거야."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가혹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보통 부모들이 아이들이 힘든 상황에 닥쳤을 때도 "원래 그래. 그런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공감 없는 말인지도 말이다.

  

엄마가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엄마가 되는 것이 힘들지만 당연히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생명을 품는 일에 세상 고귀하고 축복받을 일이 분명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쉽게 받아들이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 누구에게도 "그래도 괜찮은 건 없다".

 

glow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