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비었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뭐라도 집중할 거리가 필요했다.
서랍에서 색종이 한 장을 꺼냈다.
초등학생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색종이라
기분이 묘했다.
뭘 만들까 생각하다 종이학을 만들기로 했다.
종이학을 천 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하늘색 색종이를 대각선으로 접었다가 펼쳤다.
다시 반대쪽으로 접었다.
생긴 선들이 색종이 위에 남았다.
아주 오래전에 접어서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손이 접는 순서를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가운데로 눌러 네모를 만들었다.
날개를 접는데 균형이 맞지 않아 다시 펴고
손끝으로 선을 맞췄다.
앞에 한번 접었던 선이 또렷해서, 두번째로
새로운 선을 만들어 접을 때는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됐다.
약간 귀퉁이가 찌그러진 짝짝이 날개가
살짝 눈에 밟히지만, 이만하면 제법 학 같은
모습이 보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손끝에 남은
종이학 하나로 마음이 채워졌다.

퐝퐝
💿일요일 알람
아침 7시 정각, 띠링-띠링 하는 알람 소리가 울리자 재빨리 손을 뻗어 X버튼을 눌렀다. 주말인데도 습관처럼 남아 있던 알람이 나를 깨운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 어떻게 보낼지 생각했다.늘 그렇듯 정확하고, 눈치가 없는 알람이지만내 선택으로 시간을 움직여보고 싶었다. 청소를 시작했…
타인의 등에 기대던 날
식당에 들어가면 먼저 테이블 간격부터 살펴본다. 어느 순간부터, 외식할 때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다. 몸이 먼저 편안한 거리를 찾아내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의자를 끌 때 옆 테이블과 부딪히진 않을까, 목소리를 조금 낮춰야 할까.이런 걸 신경쓰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한때, 비좁고 …
순간이동
버스 안에서 눈이 자꾸만 감겼다. 하루 종일 머리를 쓰고, 몸을 움직였더니피로가 온몸으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졸다가 창문에 콩하고 머리를 박았는데,아픈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헤드뱅잉하지 않았길 바란다. 눈을 뜨면 다른 곳, 감았다 뜨면 또 다른 곳.창밖 풍경이 점프하듯 바꼈다.몸은…
간절함의 무게
간절히 바라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준다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이끌려 영천 돌할매공원을찾았다. 시골마을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뱅글뱅글 들어갔다. 신년 초도 한참 지난터라 한적할 줄 알았는데,예상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향초를 하나씩 사서,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은은…
잘 가,새로운 사람에게
책장을 정리하며 당근마켓에 올릴 판매글을 쓰는 내 모습이 유난스러워보였다.에세이, 소설, 만화, 사회과학으로 분류하고또 그 안에서 공통된 주제로 책들을 묶어가며괜히 더 정성을 들였다. 사진과 실제 책의 차이로 실망할 사람이 생기지않게 하려고, 각도와 빛까지 신경쓰며사진을 찍고 있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