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프라하육아 일기 <혼자 꿋꿋하게> 숲을 가로 지르는 자전거

2025. 12. 10by에스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오면 하늘은 더 높고 잎사귀들은 빛바랜 색이 된다. 가을나무와 웜톤의 프라하 전경은 꽤 아름다운 전경이다. 빛바랜 건물과 가을빛, 구시가지의 빨간 올드트램과 조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 프라하의 가을이란 한번 슥 스쳐지나가는 겨울의 예고편이지만, 그래도 일주일 중 몇일은 쾌청한 날씨를 보여준다. 육아로 가득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정신없는 새학기가 지나고 드디어 가을이 왔다. 한국과는 전혀 문화에 적응해가면서 홀로 나른하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이번 가을은 꼭 그렇게 보내리라 결심했다. 체코의 가을과 겨울사이의 햇살과 우울을 그대로 보고싶었다. 선선 바람이 불고 따뜻한 햇살이 쬐는 조용한 가을 날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9시부터 아이들 학교 마치는 3시까지 나에게 6시간 정도시간이 있다. 그 동안 매일 마주하는 집안일도 해야하고, 아이들 식사 준비도 해야하고, 그 중의 몇 일은 영어 수업 시간도 있고, 시간을 쪼개서 내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쪼개면 하루에 2-3시간 정도 되려나 싶다.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쓰고 싶은 시기가 오는데, 그게 지금이다. 그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끔 해주는 것이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책 읽기, 자전거 타기, 미술관 가기. 그것도 혼자! 혼자! 한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도전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해외에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올드타운에 혼자 음악회를 가고, 혼자 요가하러 다니면서 혼자 밥먹고 혼자 커피 마시는건 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자전거나 미술관 가기는 혼자가 어려웠다. 먼저 것 들은 정해진 시간이 있고, 미리 돈을 지불 하고 그걸 시행하려 했지만, 자전거와 미술관은 결심이 필요한 것이라 그랬던 것 같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대강 그날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몸부터 움직였다. 너무 많은 생각은 결심을 실행하기 전부터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고 있기에. 때론 몸부터 무작정 내던지는 도전이 내게 자유를 선물한다. 그 도전의 순간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고, 나는 작은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도전한다 고로 존재한다!

 

 

 

 

 

 

 

 

 

 

 

 

살아있는 모두가 삶이라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 인생의 매 경로에 수 많은 ‘내’가 있고 인생은 그 ‘나’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모든 선택에 모순이란 있겠지만, 그것 또한 삶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마냥 비관하고 싶지 않다. 내가 프라하에 사는 동안 최대한 여기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발견하고 싶기 때문이다. 해외를 떠돌며 살아가는 엄마들의 눈가에는 외로움이 서려있다. 매번 4-5년 마다 국가를 옮겨 다니며 현대판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외국인 엄마들에게도 말이다. 가끔은 정말로 지친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지친다고. 매 국가를 옮길 때 마다 공들여 쌓은 블럭을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그럼에도 그 공허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메우고 또 텅 빈채로 나두며 살아간다. 꿋꿋하게. 저마다의 방식 대로.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서 빈공간을 메우고 또 채우며 서로를 부둥켜 안고. 현대판 디아스포라의 생존기를 나누다보면 동지애가 느껴진다. 흐르는 눈물을 아무 일 없는 듯 닦아내고 포옹한다.프라하에서 육아하는 나는 울산에서 육아하고 일하던 나와 다르다. 체코어도 못하고 까막눈의 팔푼이 외국인으로 사는 것 같다. 모르는 것 천지의 곳에서 살아내는 것이 퍽이나 힘들기도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해맑은 ‘나’를 발견한다. 모르기 때문에 작은 도전도 큰 성취를 느끼게 되고 그 순간에서 조금씩 이국 땅에 스며든다. 이방인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타국에 사는지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같기도 하고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숲을 가로 지른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자전거 속도대로. 프라하에서 지속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경험 중 하나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한국보다 자전거 통행에 너그럽고, 자전거 도로도 잘되어 있고 곳곳의 작은 공원과 도시가 어우러진 프라하에서 페달을 밟아 보는 세상은 어쩐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이었다. 얼른 집안일을 마치고 일단 자전거부터 타고 나간 날이었다. Mapy라는 체코 네비게이션으로 자전거 길 안내 모드로 목적지를 찍어 두고, 길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몇없는 프라하의 화창한 가을 날이었고, 내리막을 내려가며 줄지어 있는 상수리나무를 지나갔다. 내리막길에서 힘을 빼고 길에 나를 내맡기면 웃음이 나왔다. 

 

 

 

‘소피에 세계’에 나온 문장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 생활에 쫓겨서 각기 다른 이유로 삶에 대한 경이를 잃어버려 … 슬픈 사실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 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야.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지. 바쁜 일상 속에 삶을 즐거움을 채우는 법, 나를 돌보는 법을 지키지 못하고 익숙한 대로 건조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내 얼굴에 드러났다. 눈빛에 염세가 담기고 무든 것에 경이를 잃어버린 듯한 고단한 삶을 감당하는 어른의 눈을 하고 있는 나. 불안에 잠식 되어 밤새 잘못이루는 날도, 타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된 날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쩐지 뒷통수 맞은 것 같은 허탈한 날도, 아이들과의 실랑이에서 무력감을 느낀 날도, 끝도 없는 집안일에 갇힌 것같은 날도 있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으로 삶은 나를 길들이려 했지만,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작은 행복과 도전으로 나에게 생기를 부여할거야. 이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도전이 남아 있었네! 아직도!” 

 

 

 

사실 말은 아직도 도전을 있는 사람이었네? 라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내리막을 내려갔다 비탈 길엔 자전거를 끌고 갔고, 길가는 도중에 있었던 학교에는 학교를 마친 체코 어린이들을 보며 작은 주황지붕의 프라하의 마을을 지나쳤고, 한참을 달리고 달려 목적지 즈음에서 나는 방향을 바꿔서 멀리까지 나아갔다. Troja 성에 도착해 여기까지 왔네 하고 자축하고 근처의 아름다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예상치 못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 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카페는 정말로 아름다웠고, 내가 하는 여행은 기대치 못한 부분에서 감탄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카페가 나의 피난처가 되어 흐르는 시간을 위로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오는 길은 서둘러서 어떤 구간에서는 트램을 타고 내렸고, 숲까지 단숨에 달렸다. 집으로 가는 숲을 가로 질러 페달을 밟았다. 숲의 냄새, 숲을 가로지르는 느낌. 인적 드문 숲에서 페달을 내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했고, 아이들이 학교 마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면서 웃음이 베어나왔다. 평온한 아이들아 너희가 없는 동안 내가 무슨 일을 해냈는지 모르지?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멀리 멀리 이곳으로부터도망이라는 로맨틱한 도전을 했단다. 그리고 여기에 아무 없었던 여기로 다시 왔지. 집으로와서 짧게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의 간식을 만들어 두고 다시 픽업을 가는 . 해외살이가 원맨쑈에, 고달프기 그지없지만 이런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면 사는게 즐거워 진다. 여기서만 느낄 있는 것들을 해내며 사는 . 나의 비밀과 도전을 간직하는 일이 쌓이는 없는 바쁜 엄마를 지탱해 준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날들과는 다른 자유감을 맛본다. 날씨 좋은 날엔 무조건 자전거를 끌고 나올 거야. 혼자서 꿋꿋하게. 그래야만 아름다운 풍경을 온전히 즐길 있으니까

 

 

 

 

 

 

 


에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