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떡 한 점의 위로

2025. 10. 06by기록하는비꽃
며칠 동안 몸이 무거웠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고,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팔과 등은 묵직했고, 엉덩이와 자궁은 밑으로 빠지는 듯했다. 평소엔 잘 아프지 않지만, 한 번 아프면 세게 오는 편이다. 그런 날에는 세상 모든 일이 멀게 느껴진다. 부엌에서 냄비가 끓는 소리도, 바깥에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도, 내게는 조금 다른 속도로 들린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멀어진 것처럼.

남편이 선교사님 댁에 다녀왔다. 추석이라 몇몇 가정이 모여 명절 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아파서 가지 못했다. 남편이 돌아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한국에서 누가 쑥떡을 보내왔다더라.” 녹색 빛이 은근한 떡이 고요히 놓여 있었다. 해동된 걸 하나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입안이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쑥의 향’이 느껴졌다. 그런데 곧 그 향이 낯익은 공기를 데려왔다. 봄이면 동네거리마다 퍼지던 쑥 냄새, 부엌에서 쑥떡을 찌며 김이 오르던 날의 기억, 엄마의 손등. 그 모든 것이 한입에 스며들었다. 떡을 씹을수록 묘하게 숨이 편해졌다. 단맛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는 떡인데, 몸 어딘가가 천천히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그동안 쌓인 통증이 조금씩 흩어지는 듯했다. 이런 순간에 문득 생각한다. ‘맛’이라는 건 입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기억으로 느끼는 감각이라는 걸. 한국에서 온 쑥떡을 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병이 나을 리는 없지만, 그 향과 질감이 내 안의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것이 마음의 온도를 조금 올려주었다. 쑥의 향이 가슴속까지 퍼지는 동안, 나는 잠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멀리 떠나온 시간이, 낯선 공기가,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잠시 사라졌다. 오로지 입안에 퍼진 고향의 맛만이 남았다.

사람마다 위로의 모양이 다르다. 누군가는 향수를 뿌리고, 누군가는 차를 내리고, 누군가는 노래를 듣는다. 내겐 이런 음식이 그렇다. 직접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 건넨 음식 속에서도 충분히 위로가 자란다. 그 음식이 지나온 길, 그것을 만든 사람의 손길, 그리고 나에게 닿기까지의 시간. 그런 것들이 함께 녹아들어 ‘맛’이 된다.

창문 밖으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쑥 향이 아직도 머무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오후, 한 점의 떡이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몸이 다 낫진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나에게는 충분했다. 생각해 보면, 위로란 대단한 일에서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손끝의 온기, 혹은 이런 쑥떡 한 점. 그렇게 작고 단순한 것들이 하루를 버틸 힘이 된다. 몸이 고단할수록 마음은 단순한 걸 원한다. 복잡한 말보다, 따뜻한 맛 하나. 그게 나를 살린다.

기록하는비꽃

작가

우간다에서의 일상을 글로 씁니다.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를 펴냈고, <포포포매거진 뉴스레터>에 삶을 기록 중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덕질하며, 해낙낙하게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