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 방학을 잔뜩 누리려했더니 어쩌다 또 다시 주 7일을 삶을 살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는 들어야할 수업들이 많아 이번 방학까지만 근무해야한다고 사장님께 말씀 드렸다.
말에는 참 힘이 있다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어버리니 왠지 출근하는 게 고역이다.
일은 힘들지 않지만 하루 10시간, 출퇴근을 포함하면 하루의 절반을 온종일 쏟아야하는데
실컷 쉬고 성장하고, 학기 중의 근시안적인 상황에서 챙기기 어려운 것들을 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하루 종일을 일 하느라 써버렸다는 생각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이다.
분명 학교를 안 가니 수업 시간만큼의 여유 시간이 생겼지만, 어째서인지 영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는 개강 직전까지 근무해서 돈을 좀 모아두려고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서는
다음 직원이 구해지는대로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아무렴 학교가 1순위인 것을, 학교를 다니는 동안의 생활비가 필요해서 일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방학 내내 스트레스 받다가 나를 다시 채워내지 못 하고 개강을 맞이한다면 분명 다음 학기가 시작부터 엉켜버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사장님은 내 입장을 존중해주셨고, 열심히 구인 광고를 내주시고 계신다.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앉아서 일을 하고 늘 잘해주시는 사장님이 계심에도
어째서인가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데 온 몸의 옷가지가 거슬리다못해 멀미가 나고 곧이어 두통이 날 정도이니.
한 달 정도 내내 속이 안 좋아서 왜 그런가 찬찬히 되짚어보았더니 쉬는 날에는 멀쩡했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의 마음가짐뿐일터인데, 어째 이것마저도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일하는 동안 노트북은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해주셔서 앞서 언급한 나만의 방학 투두리스트들을 해나가도 될 것인데
그저 아무것도 하고싶지가 않다. 과하게 받는 스트레스 수준을 조절하고 애써 긍정적인, 아니 중립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데에 온 힘을 쏟느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시원하게 놓아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알바 외의 돈을 받고 하고 있는 일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해야하는 일들은 놓을 수 없지만
내 개인적인 목표나 욕심들에 해당하는 일들을 시원하게 놓아버렸다.
지칠 때에는 전전긍긍하며 애써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그냥 주저 앉아버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물론, 현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풀썩 주저 앉아버릴 수 있는 환경이 어찌보면 운이 좋은 환경이다 싶기도 하지만
잠시 쪼그려 앉거나 잠시 벽에 기대 있는 것도 나에게 분명한 쉼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친구 중에 0 아니면 10인 친구가 있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아예 하지말자 주의
그렇지만 나는 2 6 8 ... 0과 10 사이에 있는 그 모든 숫자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아예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쉬는 것이 당연히 나에게 더 큰 쉼이 되어줄 확률이 높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들, 무언가를, 일부라도 놓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나를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챙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내 삶에 큰 치유가 되어줄 것이다.
보미겨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