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예쁜 말 기록 노트

2025. 07. 08by오자히르
아이 입에서 나오는 보석처럼 예쁜 말이 휘발되는 게 아쉬워, 6년 전부터 기록을 시작했다. 세 돌 무렵부터 아이의 순수한 언어를 받아 적는 습관은 나를 위로하고 치유했다. 비이성적이고 비효율적인 육아라는 세계에서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자유를 느꼈다. 아이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내가 느끼는 사랑의 스펙트럼도 더 넓어졌다. 

7년 전 워킹맘이었던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매일 야근하던 직장은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달 작가님의 북토크에서 육아가 너무 힘들 때 아이와 나눈 대화를 글로 적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러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거라고 하셨다. 그날 바로, 나는 집에 있던 낡고 오래된 노트에 아이가 한 말을 적기 시작했다. 

"아빠가 두 마리 있었으면 좋겠어." 
일하느라 언제나 늦게 퇴근하는 아빠가 자신과 더 놀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이는 이렇게 표현했다. 동물과 사람의 단위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도 가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놀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태양계만큼 사랑해”
아는 단어가 많아질수록 아이의 사랑 표현도 함께 커졌다. 자동차 10개만큼 사랑해. 1000까지 사랑해. 천장까지 사랑해. 하늘만큼 사랑해. 그리고 우주에 푹 빠져있던 유치원 시절 “ 태양계만큼 사랑해”라며 멋지고 로맨틱한 사랑 고백을 해주었다. 

 “고생 끝에 치킨 온다.”
엄마는 마음대로 아플 수 없다. 끝없는 집안일과 육아, 일에 지쳐 밥 차릴 힘도 없던 저녁,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원하던 치킨을 오랜만에 배달시켰다. 아무리 아파도 밥은 차려야 하는 엄마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아이는 위로한다며 엄마 등을 토닥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문득 피곤함은 사라지고 웃음이 나왔다. 초1이 되어 배운 속담을 창의적으로 응용하는구나. 

“코로나19 방지 투명 망토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아빠 방에도 들어갈 수 있잖아”
아이만 할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 아닐까. 코로나에 걸려 방에 칩거하던 아빠를 못 보는 게 아쉬워 아이가 했던 말이다. 코로나19 방지 되는 투명 망토가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 얼굴을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과 순수함이 느껴졌다. 

“엄마~ 오늘 날씨 좋은데 우리 데이트나 할까?”
화창한 봄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가 건넨 이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순간 모든 고민과 걱정은 사라지고 우리는 여유롭게 산책을 했다. 엄마와 함께 외출하는 걸 아이는 데이트라고 생각한다. 두 돌 무렵부터 ‘엄마랑 데이트하러 갈까?’라고 말하며 카페에서 우리는 맛있는 도넛과 우유를 사먹었다. 연애 시절의 설렘이 느껴지는 아이의 데이트 신청은 언제 들어도 좋다. 

엄마: “오늘은 놀기만 하고 할 일은 못 했네?”
아이: “그래도 행복한 추억 만들었잖아~ 인사이드 아웃처럼 행복 구슬 하나 추가한 거야.”
매일 하기로 약속한 루틴을 아이가 지키지 못하고 마음껏 놀아버린 금요일, 저녁 목욕 후 아이 머리를 말려주다가 내 마음은 한없이 녹아내렸다. 아이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행복 구슬’은 생각 못 한 채, 오늘 해야 할 수학 문제집과 독서만 생각했던 어리석은 나를 반성했다. 오늘 하루가 '핵심 기억'으로 평생 남을 수도 있는데. 그래, 우리는 로봇이 아니니까. 이런 날도 있지 뭐. 행복했으면 된 거야. 

어느덧 6년이 지나 우리가 쌓아 올린 사랑의 언어를 다시 펼쳐본다. 아이만 할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표현, 순수한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글로 남아 다행이다. 언젠가 아이가 크면 이 노트를 선물로 주고 싶다. 세상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이 평생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 줄테니. 7살쯤 아이가 이 노트를 우연히 발견한 날 아이는 일기장에 이렇게 써 놓았다. "고마운 엄마. 언제나 날 지켜주는 엄마. 언제나 날 믿어주는 엄마." 

그러나 최대 수혜자는 엄마인 나다. 덕분에 아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어졌다.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게 감사했다. 고된 육아로 인한 ‘화’는 ‘측은지심’으로 바뀌었다. 아이도 세상에 적응하며 힘들다는 사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아낸다는 걸 배웠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오르내리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들여다 보았다. 세상을 향한 시선이 따뜻해졌다. 무엇보다 ‘존재 자체로서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내가 누구이고 무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 얼굴 비비고 깔깔 웃으며 생애 한 번뿐인 시절을 즐길 뿐. 아이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늘이 보낸 선물 같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여유와 쉼을 배우라고, 잠시 멈추어 삶을 되돌아보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라고, 다른 행복도 있다는 걸 가르쳐 주려고 이 아이는 나에게 온 것 같다. 

‘나는 좋은 엄마일까?’ 의심하고 자책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알고 있다. 사랑은 비효율, 비이성, 비생산적인 시간 속에 촘촘히 쌓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얼마 전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다가 아이가 내 품에 스르륵 안기며 말했다. “엄마가 그냥 너무 좋아.” 우리만의 순수하고 예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나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의 품은 참 따뜻했다.



 





오 자히르

sarahbae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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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히르

번역가

단순한 삶 속에서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