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간
2026년 1월 7일 수요일묘하게 사람을 건드리는 책이 있다. 그 책은 독자인 나를 긴장하게도 만들고 당황하게도 만든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읽고 여운에 잠긴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가 조금 더 자랐다고 믿는다.성해나 작가의 단편소설집 《혼모노》에는 정말로 묘한게 있다. 책을…
새해가 나타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월 21일이다. 지금쯤이면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줄로만 알았으나, 혹시나 역시나, 이번에도 아니었다! 워낙 기일이 바쁜 일을 냉큼 받았던 게 애초에 문제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매일 먼 거리를 출퇴근하자니 영 고달픈 섬사람이 …
🌿 아버지로서의 존 레논,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랑의 기록
🌿 아버지로서의 존 레논,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랑의 기록 얼마 전, 아들과 함께 주말에 호텔에 놀러갔었는데그곳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했고,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War is over, if you want it…”존 레논의 <Happy Xmas (Wa…
맛있음
2026년 1월 4일 일요일인간은 무언가를 먹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구도 생존의 목적으로만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맛있음' 또한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맛있음'은 무엇일까?농업과 독일 역사를 연구하는 철학자 후지하라 다쓰시의 《…
당신은 일자리가 아니다
2026년 1월 3일 토요일"당신은 일자리가 아니다." 이건 무슨 말일까?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읽다가 이 문장에서 멈칫한다. 당신은, 그러니까 나는 일자리가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자리를 잃고 구직 활동을 2년 째 하고 있다. 당장 일자…
자긍심
2025년 12월 29일 월요일'자긍심'이 도대체 뭔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이연숙, 남웅의 《퀴어 미술 대담》은 예술비평을 하는 두 사람의 대담을 엮어낸 책이다. 많은 말들 중에서 남웅 비평가의 한 물음이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붙잡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프라이드를 이야기…
척의 일생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universe'는 뭘까? 어째서 선생님의 손과 손 사이에 'universe'가 있다고 말하는 걸까?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영화 《척의 일생》에는 멋진 장면이 등장한다. 학교를 졸업하는 척에게 리처즈 선생님은 한가지 질문을 한다. 양 손으로 척의 머리를 …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산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마음이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서운하고 불안한 감정이 든다. 몇 달 동안 온힘을 다해 공을 들였던 일이 기대만큼 결과로 돌아오지 않았을 때,누군가를 붙잡고 땡깡을 부리고 싶어진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쉽게 풀리지 않느냐고 투덜대…
유목민 아내 농경민 남편
※ 이 글은 특정 병원 추천이나 아내를 디스하는 글도 아닙니다. 재미로 봐주시길 :) 프롤로그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쪽은 늘 내가 아니었다.대학 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관심도 없던 천문 동아리에 가입했다. 정작 친구는 한 달도 안 돼 떠났지만, 그곳에 남아 지금까지 멤버들…
☎️전화 한 통의 의미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한 친구가 말했다.“우리 엄마가 햄버거를 좋아하는데, 요즘엔 나 없으면 아예 안 드셔.”키오스크 사용하는 법이 어렵고, 직원에게 부탁하면 되지만 그것조차 부담스러워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하게 됐다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
멘탈 아츠
2025년 12월 24일 수요일인간의 감정 중에서 '화'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도 많고 궁금한 점도 많다. 그 이유는, 감정들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감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를 잘 내는 방법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예전에, 내가 다니는 명상원 원장님께 '화'에 대한…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2025년 12월 22일 월요일세상에는 오렌지만이 과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포도도 파인애플도 과일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과일도 있다고 말하는지, 왜 자신이 오렌지만을 과일로 믿게 되었는지는 궁금해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오렌지만이 과일이라는 말만 반복…
여행과 나날
2025년 12월 20일 토요일심은경 주연,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을 보았다. 이야기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처음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폭우가 내리는 여름날, 한 남성과 여성이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이게 뭐지? 추운 한 겨울에 스…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임솔아 시인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읽다가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시인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가 어떤 뚜렷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아홉 살>에는 도시건설 게임을 하는…
겨울선물
한달에 한번, 우리 아들을 자연 학교에 보낸다. 보통은 함께 다니는 동갑내기 아들이 있는 여동생이 함께 데리고 가는 편이다. 지난 밤 모임이 있어 늦게 들어오기도 했고 숙취도 있어 아침에 눈만 뜬채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찰나에 아내가 갑자기 즉흥적인 제안을 한다. "오늘은 우리도 …
크리스마스 캐럴의 추억
생일을 기다리던 때가 언제였을까. 생일이 달갑지 않다. 결국 다 먹지 못할 홀케익을 사고 식당을 예약하고 고로 통장이 쪼그라드는 의식. “너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야. 네가 안 한다고 했어!” 올 초부터 친구처럼 생일 파티를 키즈 카페에서 해달라는 아이의 마음은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여…
[프랑스의 소피] 크라스마스 루떵
“Cette année un petit lutin de Noël est venu à la maison.”올해 우리 집에 작은 크리스마스 요정이 왔어. 일 년 중 마지막 12월,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하루하루가 더 빠르게 흘러간다. 거리에는 불이 켜지고, 창문에는 별이…
우리는 왜 결혼했을까
결혼식 날, 하얀 천장 아래로 햇살이 쏟아지는 듯했다. 사람들의 웃음과 플래시가 뒤섞인 그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춘 듯 보였다. 그의 손을 잡은 채, 앞으로 걷는 모든 길이 함께일 거라 믿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그 떨림이 사랑의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의 눈부…
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는 매년 12월, 한 해의 마지막 모임에서 시낭독을 한다. 모두가 마음에 드는 시나 책 속의 한 구절을 준비해 각자의 호흡과 온도로 전달한다. 어떤 시를 소개할까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한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황성희 시인의 …
럭키데이 인 파리
2025년 12월 14일 일요일여전히 맞지 않다. 나는. 우디 앨런 감독과.첫 남편과의 이혼 후 우울감에 빠져있던 파니에게 장이 다가와 화려한 삶을 선물한다. 파니는 장에게 이런 화려함들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음을 호소하고 그의 트로피와이프가 되고 싶지 않음을 말하지만, 장은 그녀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