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
그리스는 바다의 나라다. 눈부신 윤슬과 잔잔한 물결, 파란 물감을 풀어헤친 듯한 색. 서양 문명의 발상지, 올림픽, 신화로 기억되는 나라지만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살아있는 바다 앞에서는 잠시 힘을 잃어버린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스에서 철학이 탄생한 이유를…
이미 다가온 평화
"평화를 빕니다" 1시간에 가까운 가톨릭 미사 예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신호이자, 지루함에 지쳐가는 어린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인사말이다. 두 손을 모으고 목례를 하며 서로의 평화를 빌어주는 시간. 나와 동행하였든 오늘 처음 보았든 양 옆에 자리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안녕
2026년 2월 15일 일요일안녕. 아무 탈 없이 편안함. 나는 언제 안녕한가. 우리는 언제 안녕하다고 말하나.소속감. 안녕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껴야 한다. 나는 자주 온라인 모임들을 챙겨 본다. 어떤 모임이 새로 생겼는지, 이곳은 내가 참여해 볼 수 있을지 생각…
세상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2026년 2월 14일 토요일세상은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어른들과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독상을 받으셨고, 할머니와 함께 먹던 밥은 언제나 가장 늦게 먹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밥을 천천히 먹는다고 구박받는게 일상…
기묘한 이야기 음악과 함께 자라난 아이들, 그리고 우리
기묘한 이야기 음악과 함께 자라난 아이들, 그리고 우리 10년에 걸친 시리즈물이 이제 끝이 났다.침대에 누워 그렇게 매 시즌마다 시청을 했고, 그게 벌써 10년이 되었다.그 사이 주인공들은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었고,나 역시 그 시간 동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10년이면 강…
유목민 아내 농경민 남편
※ 이 글은 특정 병원 추천이나 아내를 디스하는 글도 아닙니다. 재미로 봐주시길 :) 프롤로그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쪽은 늘 내가 아니었다.대학 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관심도 없던 천문 동아리에 가입했다. 정작 친구는 한 달도 안 돼 떠났지만, 그곳에 남아 지금까지 멤버들…
영원
2026년 2월 12일 목요일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믿지만, 죽음 이후를 다양한 모습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작품들을 즐긴다.이번 작품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일주일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그 기간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영원을 …
💿일요일 알람
아침 7시 정각, 띠링-띠링 하는 알람 소리가 울리자 재빨리 손을 뻗어 X버튼을 눌렀다. 주말인데도 습관처럼 남아 있던 알람이 나를 깨운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 어떻게 보낼지 생각했다.늘 그렇듯 정확하고, 눈치가 없는 알람이지만내 선택으로 시간을 움직여보고 싶었다. 청소를 시작했…
광장
2026년 2월 8일사람은 모여서 살아간다. 그 이유가 고대의 인간이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모여 살던 것이 본능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테다. 현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유 중에는 '외롭기 때문'이라는 항목이 절대 빠질 수 없을 것이다.사람들은 특별한 날이 되면 광장에서 서로 만난다.…
타인의 등에 기대던 날
식당에 들어가면 먼저 테이블 간격부터 살펴본다. 어느 순간부터, 외식할 때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다. 몸이 먼저 편안한 거리를 찾아내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의자를 끌 때 옆 테이블과 부딪히진 않을까, 목소리를 조금 낮춰야 할까.이런 걸 신경쓰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한때, 비좁고 …
순간이동
버스 안에서 눈이 자꾸만 감겼다. 하루 종일 머리를 쓰고, 몸을 움직였더니피로가 온몸으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졸다가 창문에 콩하고 머리를 박았는데,아픈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헤드뱅잉하지 않았길 바란다. 눈을 뜨면 다른 곳, 감았다 뜨면 또 다른 곳.창밖 풍경이 점프하듯 바꼈다.몸은…
한국어 공부
우리 부부는 10년 전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만난 지 2년 뒤, 첫아이가 태어났다.그리고 다시 2년 후, 우리는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때 첫 아이는 겨우 2살, 아직 제법 많은 말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엄마, 아빠, 마멍, 빠빠, 싫어, 노(non), …
오랜만에 아팠다
잘때 목이랑 코 부분이 건조하다 느끼고는 있었는데일요일에 입은 옷이 살짝 추웠던건지, 아니면 일요일 스케줄이 많았어서 그런건지일요일 밤에 10시에 기절하고 월요일에 일어나니 감기 걸려있더라 허허가족들이랑 교보문고랑 코스트코 가기로 했었는데.. 나는 집에서 요양함..교보문고 가고 싶었는데…
창조
2026년 1월 27일 화요일인간은 무언가를 만드는데 열과 성을 다한다. 인류는 그동안 많은 것들을 만들어왔다. 그 창조의 정점은 아마도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19세기에 메리 셸리는 시체들로 괴물을 만들어냈고 지금 21세기는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데 많은 열정을 바치고 있다…
간절함의 무게
간절히 바라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준다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이끌려 영천 돌할매공원을찾았다. 시골마을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뱅글뱅글 들어갔다. 신년 초도 한참 지난터라 한적할 줄 알았는데,예상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향초를 하나씩 사서,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은은…
#29 프라하육아 일기 <아름다운 겨울의 피날레>
#29 프라하육아 일기 <아름다운 겨울의 피날레> 분주하게 보낸 12월이었다. 12월 중순 즈음 나의 한해는 조금 빨리 마감되었다. 열흘간의 여행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루하루 꾹꾹 눌러담아 열심히 살아 내며 되이려 …
매일의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같은 시공간 안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담는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인지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 6하 원칙을 살뜰히 고루 채우지 못하면 어떠하리. 단 하나만의 선택지가 있다면 적어도 나에겐 무조건 '어떻게'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는 …
[김작가의 사이드 B 프로젝트] 당신의 올해 단어는 무엇인가요?
언젠가부터 새해가 되면 2글자로 된 단어 하나를 떠올리곤 했다. 그게 내 이번년도의 좌우명이자 모토라고. 100세 인생 단 하나의 좌우명으로 쭉 끌고 나갈 수 없는 극 P인간인 나로서는 차라리 1년 단기 목표가 훨씬 나았다. 그렇게 쌓이다보니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은 꽤나 다채로운 …
잘 가,새로운 사람에게
책장을 정리하며 당근마켓에 올릴 판매글을 쓰는 내 모습이 유난스러워보였다.에세이, 소설, 만화, 사회과학으로 분류하고또 그 안에서 공통된 주제로 책들을 묶어가며괜히 더 정성을 들였다. 사진과 실제 책의 차이로 실망할 사람이 생기지않게 하려고, 각도와 빛까지 신경쓰며사진을 찍고 있는 나…
단순한 삶의 기쁨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 불필요한 건 모두 가라앉고, 필요한 것만 남는다. 봄과 설렘과 여름의 소란, 가을의 아름다움도 지나가고, 오직 고요함만 남는다. 겨울은 하얀 눈처럼 깨끗이 마음을 비워내고, 나를 돌아보기 좋은 계절이다. 그리스에 온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