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좋아했던 소설『오 자히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외부의 인정을 좇느라 ‘자기 삶의 진짜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대인을 파울로 코엘료는 이처럼 표현했다. 20년이 지나 마흔이 된 지금도 이 문장은 여전히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 좋은 학교에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세상이 원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오랫동안 타인의 기대를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흔이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는 없다는 것. 나의 시간과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건 내려놓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사실이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생을 오전과 오후에 비유했다. 오전이 사회에 적응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라면, 오후는 내면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젊은 시절에는 성공과 성취가 중요하지만 인생의 중반을 지나면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느라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친 내 마음을 모르는 척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일과 육아로 바빠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일정표에는 언제나 해야 할 일이 가득했다. 그러던 서른 후반의 어느 날, 번아웃이 올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 나에게 오직 질문 하나가 남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해?’
더 이상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날 위한 시간을 따로 마련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내, 직장인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 가고 싶었던 곳에 가고, 원하지 않는 부탁은 정중히 거절하고, 남의 평가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이 정해 놓은 행복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는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보다 내가 편안한 삶을 선택한다. 모든 기회를 붙잡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 달리지 않는다. 흐르는 대로 삶을 내맡긴다. 멈추거나 돌아가도 괜찮다.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마흔은 이처럼 오랫동안 타인에게 맡겨 두었던 삶의 운전대를 다시 잡기에 좋은 시간이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나의 몸과 마음을 정성껏 돌보는 것. 오래 미뤄 둔 꿈을 다시 꺼내 보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목표를 따르기 전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지 묻는 것.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하루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한 시간을 남겨 두는 것.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삶의 방향을 바꾼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이다. 나는 편안한지, 즐거운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나에게 먼저 진실해져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자기 생각을 존중하는 것은 삶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언젠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남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조금 더 자유롭고 가벼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