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집 같다

2026. 08. 09by기록하는비꽃

나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는 모습을 좋아한다. 자주 쓰는 그릇은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매일 필요한 것은 꺼내기 좋은 곳에, 어쩌다 한 번씩 쓰는 것들은 조금 먼 곳에. 물건마다 자리를 정해주고 나면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요즘은 거실과 주방을 지날 때마다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자리를 찾은 물건들.

 

‘아, 이제 좀 집 같다.’

우리는 6월에 이사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처음으로 조금은 ‘우리 집’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물론 전세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집이고, 엄밀히 말하면 우리 소유의 집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전보다 훨씬 편안하다. 내 물건을 어디에 둘지 안다는 것, 아침이면 어디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이면 어디로 돌아올지 안다는 것. 내일도 모레도 이곳에서 비슷한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것. 그런 게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아이들에게도 각자의 방이 생겼다. 방이 넓지는 않아서 침대까지 놓아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 하나씩 생겼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좋아했다. 주안이 방에는 좋아하는 레고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레고를 꺼내 진열할 곳이 생겼고, 예주는 작은 인형이나 키캡처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들을 자기 마음에 드는 곳에 하나씩 놓아두기 시작했다. 아이들 방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같은 집에서 자란 두 아인데 자기 공간을 채워가는 모습은 참 다르다. 한쪽에는 레고가 줄을 맞춰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조그만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각자의 취향대로 방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졌다. 침대 하나 들어가지 않는 작은 방이어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꺼내놓을 수 있는 곳, 작은 물건 하나를 놓을 때도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는 곳. 자기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도 괜찮은 곳. 아이들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도 비슷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다시 생활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교를 정하고, 필요한 것들을 사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익숙해졌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살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어딘가 임시로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왔다고 해서 곧바로 정착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어쩌면 정착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주소가 생겼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짐을 풀었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내 손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도 따라오는 게 아닐까.

 

이사를 하고 물건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으면서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릇이 들어갈 자리가 생기고, 책이 꽂힐 자리가 생기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놓일 곳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 우리에게도 이곳에서 살아갈 자리가 생겼다. 전세냐 자가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가방을 내려놓을 곳이 있고, 장을 봐온 물건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알고, 거실에 앉으면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 냉장고 문을 열면 늘 먹던 것들이 있고, 자주 쓰는 그릇은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그런 익숙함이 차곡차곡 쌓이자 어느 순간 이곳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남편도 이 집을 우리 집답게 만드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다. 조금 어두웠던 전등을 밝은 것으로 바꾸고, 수도를 손보고, 화장실 배수구도 고쳤다. 방문에는 페인트를 새로 칠했고 문고리도 손봤다. 살다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불편하면 매일 신경 쓰이는 것들이다. 하나를 고치고 나면 또 다른 곳이 눈에 들어왔고, 남편은 그때마다 손을 댔다. 새집도 아니고 우리 소유의 집도 아니었지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집이니 불편한 것은 하나라도 덜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손을 거친 곳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집은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되어갔다. 나는 물건의 자리를 찾았고, 남편은 집 안의 불편한 곳들을 찾았다. 아이들은 자기 방 안에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갔다.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집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7월이 되자 집 안의 웬만한 것들을 다 고쳐놓은 남편은 우간다로 돌아갔다. 네 식구가 살 집은 그렇게 거의 완성되었다. 우리는 다시 셋이 되었다.

기록하는비꽃

작가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와 『사모 엄마 아내 선교사』를 썼고, <포포포매거진> 에디터로 일상의 순간을 안온하게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