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이전, 온종일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나의 숨통을 종종 틔우던 곳이 바로 극장이었다. 신생아를 돌보는 동안에는 유축을 하며 와이드 모니터로 그간 미뤄두었던 명작을 챙겨보았고, 반려인에게 아기를 맡겨두고 바깥 외출을 하게 되었을 즈음부터는 기회를 보아 극장에 갔다. 걸어서 10분이면 '메가박스 영종'에 도착하였다. 그 덕분에 출산과 육아로 인하여 티모시를 큰 스크린으로 볼 기회를 놓치면 어쩌나 안달하던 <듄: 파트 2>와 <웡카>를 극장에서 보았고, 1년 뒤에는 <컴플리트 언노운>도 보았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러닝 타임을 절반 정도 넘기고, 갑작스레 찾아온 오한과 고통으로 난생처음 극장을 뛰쳐나왔던 기억도 잊을 수가 없다. 유선염인 줄도 모르고 무식하게 버티다 고열을 이기지 못했던 거다. 어느 날에는 고맙게도 <땅에 쓰는 시>를 상영해 주어, 주말 오전에 커피를 한 잔 사들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여 꿈꿀 수 없었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반려인에게 크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던 날에는, 마침 시간이 맞아 고른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새삼 나의 감정을 돌아보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룸 넥스트 도어>, 재개봉한 <도어즈>, <브루탈리스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마작>, <베이비 걸>, <국보>, <누벨 바그>, <아이들>까지 다양한 작품을 여기서 보았다.
(상영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포레스트 검프>의 그 유명한 대사가 적혀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산 이전에는 메가박스에 갈 일이 드물었다. 서울에 일하러 가는 날에는 좋아하는 극장들, 일명 다양성 영화관(...이라는 단어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에서 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한참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기에 재미를 붙인 탓도 있다. 메가박스 영종은 때때로 반려인과 함께 찾았는데, 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경험하러 갔다. 꽤 인기가 있는 영화를 상영할 때에도 극장에 갈 때마다 사람이 워낙 적었는데, 더구나 코로나19를 넘기며 과연 이 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늘 걱정을 하였다. 그래도 그땐 걱정에 아직 웃음이 섞여 있었다.
동네 극장이 동아줄이 될 줄이야! 면허도 없고 아기를 데리고 멀리 나가기도 무서운, 누구에게 온전히 맡겨두기도 불안한 초보 엄마가 섬에 갇혀 우울감에 빠져가는 동안 메가박스 영종은 그야말로 나에겐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었다. 영화를 보는 일 외에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곳,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오로지 나의 감각과 생각과 느낌에 집중할 수 있는 그곳이 바로 극장이었다. 집에서 10분 거리지만 마음은 세계 각국과 수많은 삶을 오가며 살았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였던 바로 그 이유를 다시 찾았다.

(프랑스인이 아닌 내게는 너무나 귀여웠던 <누벨 바그>)
소중하고 또 소중한 메가박스 영종이 지난 4월 20일을 마지막으로 휴업에 들어갔다. 언제 다시 열릴지 기약이 없는 휴관이다. 이제 원하는 영화를 보려면 적어도 왕복 3시간 이동을 감수해야만 한다. 올해는 어린이집 등하원을 내가 맡고 있기에, 영화 한 편 보자고 귀한 시간을 버릴 결심이 쉽지는 않다. 게다가 섬사람이 감당할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고!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겨울철 "지방 도시"의 번화가에 매달린 수많은 전구를 촌스럽다는 투로 적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쎄, 서울에 사는 동안에는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진 적이 전혀 없었다고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처음으로 혼자서 공항철도역 앞 카페에 갔던 날, 역전 광장에 우뚝 선 크리스마스 트리와 가로를 장식한 일루미네이션에 나는 마음이 몹시 따뜻하였고 큰 위로를 받았다. 내겐 더없이 아름다운 연말 선물이었다.
프랜차이즈 극장의 수직계열화, 획일화를 비판하며 대안적 영화 상영과 배급을 하겠다는 꿈을 함께 꾸는 사람들과 협동조합을 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알았을까? 15년쯤 뒤에 내가 다름 아닌 메가박스의 한 지점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그의 귀환을 간절히 원할 줄이야. 나이가 들며 쑤시는 데가 여럿이지만, 무엇에 대해서든 단정하여 말하기를 조심하는 신중을 얻었다. (비겁하다거나 주저할 뿐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겠어!) 출산과 육아 이후로 달라진 나의 삶이 내게 건넨 새로운 경험과 교훈이 하나둘 늘어간다.
(2024년 겨울, 운서역 광장. 여러 외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덧. 제발 돌아와 줘요, 메가박스 영종...
(도와줘요, 회색의 간달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