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셋이 떠난 체스키크롬로프, 미완성에서 미완성으로 통하는 문

2026. 04. 21by에스텔


#30 셋이 떠난 체스키크롬로프, 미완성에서 미완성으로 통하는 문

 

 

사건의 시작

 

체코에서 맞는 세 번째 부활절 연휴였다. 부활절이 되기도 전부터 부활절 계획을 묻곤 하는데, 무작정 자전거 여행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말을 내뱉고 나니 어쩐지 절반은 준비된 것 같았다.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자전거 세 대를 기어코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래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지. 그냥 해내는 거야. 여태 우리가 했던 여행은 어딘가 완성되지 못한 여행이 많았다. 둘째가 어리고, 어르고 달래며 걷다 보면 도시의 반의반도 돌아보지 못하고 돌아온 도시들이 여럿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여행에서 배운 것들이 있었지만, 여운이 남고, 아쉬움이 남는 여행지는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아 그리움을 아쉬움으로 대체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삶은 계속되니까.. 그렇다면 마침표를 찍어보러 가보고 싶다. 그다음엔 뭐가 있을까?

 

두려워 그렇지만 두려워 하지 마, 그렇지만 두렵다. 아이들과 머물 작은 호텔을 예약했다. 이제는 물러설 곳도 없다. 그렇다. 우리는 세 명이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나와 어린 남매만. 무모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버킷리스트에 적었으니까 무조건 해야만 하는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해야 해. 남편은 업무로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우리는 모처럼 봄날에 집에서만 보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밖은 봄의 축제고 우리만 집에 있을 순 없지. 아직 둘째가 여전히 어리지만, 이것은 ‘모험’인 것이다. 꼭 이럴 때면 영화 슈렉3에서 피오나 공주가 자신을 마법에서 풀어줄 왕자를 기다리지 않았고 나 자신을 구했다고 말했던 것이 자꾸 생각난다. 남편에게 한없이 의지하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불평하고 있을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우리를 구하면 된다. 내가 공주고, 왕자고, 모험이고 다 하면 된다. 간단하다. 하하하. 

 

내가 공주고 왕자고 다하는 그 모험. 그 모험 장소는 ‘체스키크룸로프’로 정했다. 우리의 미완성의 여행지였다. 그래서 마침표를 찍고 싶은 도시. 체스키크룸로프는 아름다운 체코의 소도시다. 이 도시는 블타바 강을 끼고 주황색 지붕집들이 소복하게 모여있고, 아름다운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무척이나 로맨틱하여 신데렐라가 살았을 것만 같은 곳이다. 지난 여행에서 체스키크롬로프의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었으나, 여건상 겉만 대충 훑어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마을을 여유를 가지고 촘촘히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시간이 많지 않은데 둘째가 도무지 걷지를 않으니 업고 안고 다니느라 반의반도 돌아다니지 못한 여행지였다. 게다가 체코에서 차량 2시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 그러니까 너로 정했다. 체스키크룸로프. 우리 모험 장소. 

 

자전거 여행의 실질적인 준비는 자전거 3대를 완비하는 것. 여행지에서 대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아이들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자전거를 챙겨가는 것이 속 편한 방법이었다. 첫째의 자전거를 둘째에 물려주고 첫째의 자전거를 중고로 사야 했는데, 체코 중고거래 앱에서 24인치 자전거를 샀다. 체코인인 척 Ai의 도움을 받아 거래를 성사시킨 남편. 슬프게도 내가 접촉한 체코인들은 영어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서 외국인이라고 여겨지면 답장을 보내주지 않았다. 어쨌든 자전거를 갖췄다. 

 

마음먹었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헤지 백 스타일의 차였고 다행히 트렁크가 웬만한 SUV보다 넓은 편이었다. 어떻게든 나는 자전거 3대를 트렁크에 쑤셔 넣는 기술을 터득해야 했다. 이리저리 첫째의 자전거 바퀴를 떼고 넣어보고 자전거를 겹쳐서 넣어보는 시행착오를 겪다가, 결국 해냈다. 일단 자전거는 쑤셔 넣었다. 자전거 테트리스 성공! 자 이제, 프라하에서 차량으로 두 시간, 아빠는 없고 우리는 세 명이다! 쓸데없이 비장해 졌던 건 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여행하는 일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자기 짐을 스스로 챙기고, 간식도 챙기면서 여행을 준비했다. 두려 울수록 어깨는 가벼워야 한다. 짐을 많이 챙길수록 에너지가 많이 들고 심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간단한 옷가지들을 챙겨 놓고, 짐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일렀다. 내일은 엄마랑 자전거 여행하는 날이고, 엄마는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다. 함께 여행을 채워가고 싶으니, 적극적인 자세로 여행에 임해줬으면 한다고.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우당 탕당 출발이다. 

 

 

홀어머니 대장정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대충 빗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틀 치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차 안에서 아침을 먹고 약간의 교통체증을 뚫고 도착한 체스키크룸로프. 아이들과 제일 첫 번째로 한 일은 기념품 가게에 가서 바로 원하는 것 하나 산 것이었다. 아빠가 없으니, 엄마가 대장이다. 얘들아 기념품 가게 가서 얼른 사자, 빨리 사야 오늘내일 더 많이 가지고 놀 수 있다. 아이들은 짐짓 망설이다가 나무로 만들어진 팽이를 골랐다. 그리고 레스토랑에 가서 아이들은 팽이를 가지고 놀았다. 첫째가 먹고 싶다는 스테이크도 시키고, 파스타도 시키고 먹고 싶은 메뉴를 시키면서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여태 여행하며 남편이 눈치 준 것도 아닌데, 괜히 내 마음이 여태 불편했었나 보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성곽을 둘러보고, 작은 소품 가게들도 둘러봤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둘째가 너무 어려서 그 당시에 살펴보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오게 되다니.. 그러면서 여기서 나무를 깎아 만든 후추통이며 오일 브러쉬, 반짝이는 유리잔이며 남편 눈치 안 보고 이것저것 절반은 준비된. 성곽 구경을 마치고 숙소 체크인을 하고 의기양양하게 조식을 신청했다. 내일 아침엔 일어나서 조식을 먹는 거야! 

 

늦은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실어 놓은 자전거를 빼서 조립하고 아이들은 헬멧을 쓰고 마을 한 바퀴 돌고 오자는 말에 아이들이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그러고 신 나게 자전거를 탔다. 걸으면 천 리 같은 길이 자전거를 타면 어찌나 쉽게 가는지. 저무는 석양, 아름다운 주황색 지붕 집들, 작은 골목, 강너머로 보이는 동화 같은 마을의 풍경. 아이들과 나는 수시로 위치를 확인했고, 챙겼다. ‘브레이크 잡아, 오른쪽으로 갈 거야! 차 오니까 갓길로 피해!’ 먼 훗날 이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페달을 밟고 나아가고 우리는 수시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조금만 힘내 저기까지 가보자, 우리는 팀이야’ 라고 외친다. 

 

그동안 첫째가 참 많이 컸다. 동생과 나를 챙기며 든든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하기도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웃기게도 얼마나 내가 못 미더우면 저럴까 싶은 거다. 그렇지만 대장이 부족해야 쫄병들이 자란다. 듬성듬성 빈틈을 아이들이 메꾸면서 우리 셋이 하는 여행에서 아이들이 분명히 얻어가는 것이 있을 거다. 아이들은 불평 없이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에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고 내리막에는 페달을 밟지 않고 속도를 즐겼다. 자전거를 타면서 보는 풍경은 파노라마 같다. 한 번에 넓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고, 그날의 햇살과 바람을 뺨으로 느끼며 ,오감으로 공간을 기억하는 방법이랄까. 원래 계획은 자전거 도로를 통해서 블타바 강을 따라서 수도원까지 가보는 것이었는데, 아이들 차도를 너무 무서워해서 구시가와 마을을 크게 돌고, 다른 마을을 이동하는 대장정을 시도하진 않았다. 둘째가 큰 불평 없이 이 여정을 함께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많이 컸다.

 

여행하는 내내 수시로 남편을 놀리는 맛으로 보냈다. 우리는 당신 없이도 너어무 즐겁다. 수시로 사진과 조롱을 보냈다. 남편의 슬퍼하는 반응에 상당한 기쁨을 느꼈는데, 함께 여행하면서 대장 눈치를 봐야 하다 보니 이렇게 누린 자유가 해방감을 줬던 것 같다. 그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  아이들은 아빠를 그리워했다. 아빠랑 가아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그래도 아빠 없는 쾌락을 즐겼기에 별다른 감정적 호소 없이 넘어갔다. 좋아하는 메뉴 1인 1개씩 시키고, 기념품 쇼핑에, 체코의 굴뚝빵 ‘뜨르들로’도 인당 1개씩 사주는 엄마와의 여행이 색다르게 즐거움을 줬을 거다. 다음에는 남편과 아이들끼리 여행을 가고 나는 혼자 남았으면 좋겠다. 이 모험의 큰 그림은 바로 이것이다.  

 

미완성에서 미완성으로

 

이것은 엄마의 성장기다. 어르고 아등바등 살아내며, 체코어도 못하는 팔푼이로 살면서도 인생의 평수를 조금이라도 넓혀보려는 발버둥이 있다. 아줌마의 별 볼 일 없는 자아의 평수가 아이들과 즉각 동기화됨을 느꼈을 때, 더없이 큰 용기가 생긴다. 내가 삶을 즐기고 도전하는 만큼 아이들의 삶이 넓고 깊어진다 생각하면,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일상 노동에 지쳐 심드렁한 아줌마여도 조금이라도 내 인생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본 것들을 늘려보는 것, 그래서 한 뼘씩 넓어진 내 일상을 보면 전혀 하찮지 않다. 그 일상이 아이들에게 또 미완성의 조각으로 남아 어떤 문을 열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번엔 아빠가 없었으니까, 다음엔 아빠와 함께하고 싶을 수도 있고, 다른 도시로 우리끼리 자전거 여행을 훌쩍 떠나볼 수도 있겠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의 틈을 조금씩 줄여나가며 느끼는 성취감은 체코에서 살면서 내 힘으로, 내 두 발로 살아낸다는 자립과 적응의 과정이다. 삶은 해석에 달려있다. 이 미완성의 여행 마침표를 찍고, 다음 여행의 문장을 써내려 갈 수 있을 거라는 또 다른 가능성은 또 다른 미완성을 뜻한다. 이렇게 우리의 서사가 조금씩 만들어진다. 

 

 

에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