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 중에 필로제니아(philoxenia)라는 단어가 있다. ‘사랑하다’를 뜻하는 ‘philo’와 ‘낯선 사람, 외국인’을 의미하는 ‘xenos’가 결합해 ‘낯선 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환대’라는 한 단어로 간단히 번역할 수 없고, 경험으로 배워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단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낯선 이를 환대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였다. 제우스가 인간으로 변장해서 사람들을 시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로제니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리스에 남아 있다.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태도,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는 마음, 낯선 이에게도 거리낌없이 친절을 베푸는 문화. 이런 경험은 이방인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처음 그 의미를 실감한 건 어느 마트에서였다. 과일을 구매할 때 무게를 재고 가격 스티커를 붙여 계산대로 가져와야 하는데 처음이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해 주었고, 직원은 직접 스티커를 붙여와 내게 웃으며 과일을 건네주었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도 늘 여유로운 미소로 환영해 준다. 그리스 식당의 음식은 언제나 양이 푸짐하고 디저트를 무료로 준다. 자기 식당만의 고유한 디저트를 대접하는데 전통 도넛인 루쿠마데스, 레몬 주스,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카페에 오래 앉아 있어도 전혀 눈치 주지 않는다. 손님을 신처럼 잘 대접해야 복을 받는다고 여긴다.
“Hello, my friend!” 아라호바의 어느 시골 가게에 갔을 때 주인이 나를 반기며 말했다. 구매한 것을 계산할 때에도 “Perfect!”를 계속 외치며 감탄해 준다. 별것 아닌데 무엇을 선택하든 존중한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레프카다 섬 여행에서 숙소 주인은 직접 짠 올리브 오일과 와인을 선물로 주었다. 너그러운 마음은 해 질 녘 노을처럼 우리 가족의 여름 휴가를 풍요롭게 물들였다. 에비아 섬의 어느 카페에서는 오늘 첫 손님이라며 생수병 하나를 무료로 주었다.
이탈리아의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그리스인 웨이터는 우리가 그리스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멀리서 달려와 악수를 건네며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그 순수한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한류 덕분에 어디를 가도 환영받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먼저 건네며 블랙핑크와 BTS를 좋아한다고, 한국인 피부는 어쩜 그렇게 좋냐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고 친근하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요가원에서였다.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You are not alone.”이었다. 이집트에서 온 수련생도 있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방인에 대한 친절은 더 큰 기회를 가져왔다. 프랑스와 터키에서 온 도반도 새롭게 들어와 나에겐 다양한 국적의 친구가 생겼다. 만약 내가 요가 선생님이었다면 소수의 외국인을 위해 기꺼이 언어를 바꿀 수 있었을까.
낯선 도시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받은 친절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내가 받은 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당신은 여기서 환영받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다가갈 수 있는가. 그럴 여유를 나는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는가.
필로제니아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처음 만난 이에게 작은 친절을 베푸는 일, 잠시 시간을 내어 길을 가르쳐주는 일,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미소를 건네는 일. 이처럼 작은 친절이 무수히 쌓여 삶이 얼마나 충만해지는지 그리스인은 내게 알려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건 언제나 다정함과 친절, 사랑이다.
꾸미지 않은 순수함,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 그리스 햇살처럼 눈부시게 환한 미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질 수 있을까. 선한 사람들 곁에 있으면 내 마음도 함께 정화되는 느낌이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건 유명한 관광지나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이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데 있다. 왜냐하면 가장 인간다운 것이니까.
진짜 삶은 책상과 스크린 밖에 있었다. 어쩌면 생의 한가운데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라고,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삶을 사랑하라는 신의 뜻이 아니었을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따뜻하고 친절하며 소박한, 지구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에서의 시간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이곳에서 배운 환대의 가치는 오래 남을 듯하다.

오 자히르
sarahbaek5@gmail.com

오자히르
번역가
단순한 삶 속에서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