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수요일
삶은 잃어버린 것 투성이다. 누군가의 잘못된 조언으로 평생의 인연을 놓치기도 하고, 이념을 중시하느라 현재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인연을 쫓아 혈연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삶이지 않을까. 나를 나로서, 가족을 가족으로서, 현재를 현재로서 영원불변하길 원하지만 그럴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삶이지 않을까.
아주 오랜만에 위화의 소설을 읽었다. 《원청》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줄곧 잃어버리기만 한다. 배우자를, 자식을, 부모를, 고향을, 친구를. 원치 않게 쉬어가게 만든다, 위화라는 소설가는. 어쩔 수 없다.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으면, 저절로 쉬어야 한다. 하지만 이내 곧 다시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위화라는 소설가는.
원청은 잃어버린 도시다. 린샹푸에게만은 그렇다. 거짓으로 지어낸, 존재하지 않는 도시이지만 린샹푸에게는 아내의 고향이고 아내를 만날 수 있을거란 희망을 주는 도시다. 그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원청이라는 도시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린샹푸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또 잃는다.
샤오메이에게 린샹푸는 원청과 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영원히 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는 린샹푸가 있어 마음 속에 원청을 가질 수 있었다.
잃어서 또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하나쯤은 있다. 하지만 그게 마냥 슬프거나 아프기만 하지는 않을테다. 원청이 있어 아름다울 수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아름다움을 꿈꾸기도 하지 않을까. 내 마음 속의 원청을 오늘 한 번 찾아볼까.

에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