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일기

2026. 03. 10by한도리

새 학기가 시작되며 나름의 큰 변화가 있었다. 한 해 동안 근무시간 단축 제도를 활용해 캉캉이의 등하원을 도맡았던 반려인이 전일 근무로 돌아갔다. 필요하다면 이른 등원과 늦은 하원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드문드문 일을 나가는 날 외에는 다음 계획을 정할 때까지 내가 등하원을 전담하기로 했다. 작년에 많은 일을 한 번에 벌여 아기 얼굴을 마주 볼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던 아쉬움을 보상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어린이집에 가기 이전 16개월 동안 아기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아직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등원 며칠 전에 첫걸음을 뗄 정도로 활동량도 많지 않은 아가였기에 같이 할만한 게 많지 않았다. 장난감을 던지거나(그 나이엔 물체가 어떻게 떨어지거나 변화하는지 확인하는 실험과도 같은 행동이라더라), 함께 그림책을 보거나 동네 산책을 나가는 정도랄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밥을 먹이고 치우고, 타이밍을 잘 맞춰 낮잠을 재우기는 또 얼마나 힘든지.

 

육아를 하다 영영 고립되는 건 아닐까, 직업 세계에서 완전히 잊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쪼옥 짜내어 무언가 쓸모 있는 일을 몇 방울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주위를 원망했다. 불안한 마음에 차곡차곡 받아두었던 일을 아기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뒤로 쳐내기 시작했다. 주중에는 사람을 마주하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그 일을 준비하는 일을 했다. 아침에 10분 놀이시간을 가지고, 저녁에는 영상통화로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주말에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캉캉이는 지금도 키보드 그림을 보면 "엄마 일 하는 거"라며 누르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항로가 끊어진 섬처럼 보낸 16개월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쉬지 않고 그물을 던졌다. 이윽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였다고 느낄 때쯤 건강도 역량도 밑바닥을 드러내어,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물고기('물'에 '고기'가 붙는 이 단어를 '물살이'로 대체하자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생각하지만 나는 '물고기'의 어감이 마음에 드는 걸) 신세가 되었다. 이제는 한두 잔 물을 부어서는 명줄을 이어갈 수 없으리라, 새로운 물꼬를 터야만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여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

 

 

매일의 칸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2025년, 그래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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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에 새로이 해내기로 한 일

 

1. 수영: 자유형에서 멈춰도 좋다. 형태와 속도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물속에서 아무것도 잡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익히자.

→ 2월부터 배우는 중! 헬퍼를 등에 매달고 킥판도 오늘에서야 놓아보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2. 운전면허 취득: 물론 당장 운전을 하고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따두자. 언제 필요할지 몰라.

→ 수영 루틴이 좀 자리 잡으면 학원에 다니려고 함.

 

3. 커리어 전환: 박사과정에 진학을 하든 새로운 분야를 찾든 진로의 방향을 재설정하자.

→ 부지런하게, 자신감 있게,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자. 나의 실패는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미뤄두었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다양한 사람도 만나자. 시간을 알차게 쓰자. 당장 무엇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창조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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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르는 하원길 풍경. 어린이집을 나와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캉캉이 어린이의 입은 쉬지를 않는데, 몇 번은 느닷없이 "나 엄마랑 아빠 좋아해."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못지않게 커다란 목소리로 "엄마, 아빠도 캉캉이 많이많이많이많이 좋아해!"를 외치며 한없이 따뜻하고 밝은 기운을 만끽한다. 만 2세 어린이는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걸까? 나는 너의 통통한 볼에 내 볼을 비빌 때, 네가 내 품에 안겨 잠이 들 때, 우리가 서로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주고받을 때 참 좋아.

 

육아 선배들 말로는 "지금이 가장 예쁠 때"라는데, "평생 효도를 만 3세까지 다 한다"던데 이런 마음을 의미하는 걸까? 그러나 나는 이 친구가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부모보다 친구를 더 중요하게 여기더라도, “자기가 잘나서 그만큼 큰 줄 알고"(수많은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이 아닌가!)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서더라도 지금의 순간을 그리워만 하지는 않을 듯하다. 조금은 서운하겠지만 더 많이 뿌듯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살아보지 못한, 그만의 삶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뛴다. 이건 대체 무슨 감정일까? 나는 캉캉이에 대하여 '내 속에서 키운 아기', '내 배로 낳은 자식', '내 분신'과 같은 말을 쓰지 못한다. '나의 OO'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와 나를 동일시한 적이 없다고 단언하는 중에도, 결국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의 존재 어딘가에 내가 깃들어있다고 느끼는 걸까? 캉캉이가 자라나며 만날 새로운 세상과 삶이 내 것인 양 설렌다.

 

 

어린이가 자랄수록 등하원길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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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 영화에서 일본인 개발자는 대만인 엔지니어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건넨다.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모두 처음인데, 다시는 오늘과 같은 아침을 살 수 없는데 왜 다들 처음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이다. 자신과 영혼의 틀이 비슷한 사람, 그의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사업화하기 원하지만 현실적 문제로 주저하는 상대에게 건네는 얘기다. 좀 상투적인가? 하지만 이 영화 안에는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깃들어있다.

 

캉캉이의 삶만 새로운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문장을 되뇌어 말과 관계를 연습하는 어린이와의 대화일지라도 매 순간 형태만 같을 뿐,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상황은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나의 일상 역시 매일 새것이고 처음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진저리 치는 순간, 새로운 시작이 무서워 망설이는 동안에도 시간은 조금씩 나아간다. 수영장 바닥의 검은 타일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로 밀려나간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서두르지도 말자.

회복과 믿음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변화하는,

그렇게 살아가는 내 시간을 만끽하자.

 

 


행운 같은 타이밍으로 종영 회차를 볼 수 있었다.

 

 

한도리

N잡러

세 명이 한 가족, 섬에 살아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를 가장 좋아해요. 때로는 영화를, 소설을, 친구의 이야기를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