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장강박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물건을
잘 못 버린다. 영원히 오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 (그 언젠가의
쓸모라는 검약함) 어리석음. 기억 저편에 묻어 둔 과거가
튀어나오는 순간도 얄궂기 그지없다. 90년대 초반 Y2K 감성이
물씬한 H.O.T. 자서전과 책받침 더미로 가득한 내 최애 덕질 박스는 어떻게 찾았는지. 현 남편이 전 남친의 다이어리라는 월척을 낚아 정독 중이었다. 짐꾼이자
통역사로 친누나의 라오스 여행에 끌려간 나의 엑스가 여행 중에 적은 선물. 유일한 수신인이 나였던 그
일기는 정리하지 못한 엑스의 흔적이었다. 글이 업인 사람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일기는 기록할 만한 사료라
우겨 보지만, 차마 놓지 못한 미련은 아니었을까.
동물 잠옷을 입고 내 결혼식 사회를 보던
동아리 후배들이 "누나 전 남친 어제 경영관 지나가던데요."
미국식 유머를 남발할 때. 흙빛으로 굳어가는 시가 어른들 앞에서 나는 눈치도 없이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리허설하러 일산까지 찾아온 고마운 녀석들이 결혼식 난봉꾼으로 찍혀 아직까지 선배들한테
구박받는 게 미안할 뿐. 청량하고 싱그러운 청춘과 지질하고 두서없는 흑역사의 양면을 공유했던 한때를
지나 만나면 죽는다는 도플갱어처럼 우연이라도 그를 마주치는 일 없기를. 서로 반짝이던 20대의 청춘 딱 거기까지로 박제된 엑스의 역사가 왜 거기서 튀어나온 건지.
그로부터 얼마 후 남편의 옛날 맥북에서 전
여친과의 유럽 배낭여행 사진 폴더를 발견한 건 평행이론일까. 엉겁결에 성사된 각자의 옛사랑 조우는 (적어도 나는) 꽤 흥미로웠다.
"많이도 다녔네. 그래서 나랑은 여기 안 간 거야?" 농담에 진심을 돌돌 말아 던지며 생각했다.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곧 죽어도 가지 말아야겠다. 라오스.' 전 남친의 여행기를 추적하는 건 몽글몽글한 추억 여행이 아니라 미저리 아닌가.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남편과의 여행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둘 중
하나가 아파 영어도 안 통하는 응급실에서 손짓발짓으로 목숨을 구걸하거나, 비행기를 놓칠 뻔하거나. 그건 우리가 현재진행형의 관계라서일 것이다. 망각이라는 축복에 기대
과거를 포장할 필요 없는.
훌쩍 떠난다 해도 현실을 도피할 수 없는
법이다. 아이 똥 기저귀가 날아다니거나, 기껏 찾아간 명소가
공사 중이거나. 일상의 잡음은 끊임 없고 곧 불협화음의 주파수에 익숙해진다. 아이가 조용하다는 건 필시 무슨 사고를 치는 중이라는 촉이 발동하는 것처럼.
에펠탑이 보이는 5성급 호텔로 순간 이동한들 잠들기 전의 풍경은 매한가지. 새근새근 격렬하게, 데굴데굴 평화롭게 굴러다니는 아가 도토리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오늘의 무사에 안도하겠지. 그렇게 별스럽지 않은 하루, 오늘이라는
여행에 감탄하며.

youme
너와 나, 합해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