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1시간에 가까운 가톨릭 미사 예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신호이자, 지루함에 지쳐가는 어린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인사말이다. 두 손을 모으고 목례를 하며 서로의 평화를 빌어주는 시간. 나와 동행하였든 오늘 처음 보았든 양 옆에 자리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고, 가까운 순서로 적당히 눈을 마주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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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성당에 가지 않았다. 나는 유아세례를 받고 중고등학교 때엔 성소모임, 그러니까 수도자가 될 뜻을 가진 학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도 다녔다. 마음속은 천 갈래, 만 갈래 온갖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때때로 종교적 열망에 흠뻑 젖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20년 가까이 주일 미사에 개근을 하다시피 하였다. 스스로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그 긴 시간에 공백이 없었던 이유는 고해성사라는 부담스러운 제도와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끈질긴 회유다.
이러한 관성 덕분에 피렌체 두오모, 화재 발생 이전의 노트르담 대성당, 그 영향을 받아 건축했다는 하노이 성 요셉 성당의 미사 예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좀 더 기억에 남는 장소는 로마의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있었던 스무 명 남짓이면 가득 찰법한 작은 성당이다. 눈이 신비로운 결정의 모양 그대로 내리던 한겨울 헬싱키의, 아직도 라틴어 경문을 쓰던 동네 성당이다. 룸피니 공원 근처의 태국 전통 사원 모습을 띈 성당이다. 겨울이라 그랬던가 이글루 같이 생겼다며 킥킥 대었던, 당시 주임 신부님께서 어린이 미사에 참례한 친구들에게 "김서방"이라 부르며 재밌는 강론을 하셔서 더욱 기억에 남는 속초 언덕의 성당이다.

(로마 아우렐리오 지구의 작은 성당, Santa Maria del Riposo)
(멀리 보이는 헬싱키 대성당의 모습)

(동명동 성당에서 내려다본 속초 풍경)

(방콕의 Holy Reedemer Church, วัดพระมหาไถ่)
결혼을 하고 전혀 알지 못하던 섬으로 이사를 한 뒤로는 1년 반쯤 성당에 나갔다. 익숙한 장소, 어디를 돌아보아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제야 알았다. 여러 이유로 성당에 가기를 멈췄고 코로나19로 냉담은 더 길어졌다. 그러다 아기가 태어났고, 이 녀석이 우다다 달리고 종알종알 말을 할 때쯤에는 세례를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세례를 받게 하고 보니 매주 미사에 빠지기도 뭣하고, 그렇게 다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제도 어린이와 함께 미사에 참례했는데, 유아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노는 아기와 함께 미사에 집중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귀를 제대로 열어둔다면 '타요' 노랫소리 사이로 내 속을 건드는 단어나 문장이 들려오기도 한다. 어제 미사에는 다른 어떤 말보다 "평화를 빕니다"가 와닿았다. 2세 어린이에게도 "캉캉이가 (말도 잘 듣고 덜 번거롭게 하여) 평화롭게 해 줘~"라며 농담조의 인사를 건넸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친구는 이미 여기저기에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어린이의 웃음과 엉뚱한 행동을 볼 때면 정신없이 바쁜 일 걱정도, 누군가를 탓하는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서로 못 본 체 지나갔을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아기와 눈을 마주치며 인자한 미소나 재밌는 표정을 지어주곤 한다. 가족끼리 모이는 자리와 연락이 잦아지고, 간혹 엄마와 딸 사이에 '파바박' 튀던 불꽃도 아기가 끼면 싱거운 장난이 되어버린다.
이 이상으로 어떤 평화를 바라겠는가. 어린이가 무럭무럭 자라나 반복과 불신이 가득한 세상에서 평화를 가져오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일 테지만,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만 하다. 아니, 멀리 생각할 것도 없다. 지금의 고맙고 또 고마운 이 마음을 앞으로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