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2일 목요일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믿지만, 죽음 이후를 다양한 모습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작품들을 즐긴다.
이번 작품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일주일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그 기간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영원을 보낼 세계를 선택해야 한다. 산악 세계, 해변 세계, 박물관 세계, 자본주의 세계, 남자가 없는 세계 등 세계는 아주 다양하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한 번 세계를 선택하면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죽었다. 그래서 일주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암에 걸린 자신의 배우자가 머지않아 죽을 것임을 알았기에 그녀를 기다리기로 한다. 하지만 시간은 무작정 기다려주지 않고,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세계로 이동하려는 순간 배우자를 만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세계를 선택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아내와 함께할 영원에의 기대에 행복해하던 것도 잠시, 오래전 죽은 아내의 첫 남편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관계는 혼란에 빠진다.
영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상상을 즐기는 것도 잠시, 곧 불편해졌다. 아내는 첫 남편과 현 남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런 면에서 남성들은 수동적인 존재라 간주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다. 여성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듯 하지만 실상은 반대라는거다. 이 남편들은 여성이 어떤 세계를 원하는지는 물을 생각조차 없다. 그리고 영화는 이 둘 중 누군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로맨스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으로 간주한다. 갈등하던 여성이 둘 모두를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도 그 이유가 남성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여성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다.
심지어 영화는 벡델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하고 이들이 서로 대화도 나누지만 그 대화는 남성에 대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남성과 관련되지 않은 주제의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마치 그게 이제까지의 삶에, 그리고 앞으로의 영원에 있어 유일한 주제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다르다. 남성들은 그들끼리 대화하는 장면에서 여성 이외의 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우여곡절 끝에 영원의 세계를 선택한 후 아카이브관에서는, 남편과 함께했던 순간만 재생해 보여준다. 분명히 그녀의 부모와 함께 한 삶도,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한 삶도, 그녀의 자식들과 함께 한 삶도 존재할터인데 말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지금과 다르게 상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지금의 가치관이나 지금의 사회관을 유지한 영원은, 글쎄, 좋은 곳 같아 보이지 않는다.

에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