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마작》을 봤다. 1996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올해 국내에 정식개봉되었다. 1990년대 대만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2025년 한국에서 다시 개봉한 이유가 뭘까? 정식개봉을 추진한 사람들은 왜 이 작품을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네 명의 젊은이들이 있다. 홍어, 소부처, 홍콩, 룬룬. 이들은 팀을 이뤄 다른 사람을 속이고 그로부터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 이들은 타인들과의 감정적 교류(키스)를 경멸하며 오직 자신들만이 이성적이고 현명하다 생각한다. "세상엔 바보와 사기꾼,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 있다"며 애써 자신과 동료를 속인다. 하지만 급성장기의 대만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바보라 여겼던 타인들이 자신을 바보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은 무너진다. 그들은 결코 이성적인 개인이 아니었던거다.
프랑스인 마르트는 전남친을 쫓아 무작정 대만으로 온다. 그녀는 시종일관 두리번거린다. 이곳은 이상하다고 한다. 그녀가 두리번거리지 않은 때는 룬룬과 함께 있을 때다. 룬룬의 집 다락방에서 그녀는 아주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고, 길거리에서 룬룬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시선을 룬룬에게만 집중시킨 채 곧바로 다가간다. 그렇게 경멸해야한다고 했던 키스를 나누면서 영화가 끝난다.
영화를 보고 '개인'과 '돈'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 남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개인성을 잃는다. 개인들은 자신의 선택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자본주의에 의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선택한다. 이로써 개인은 혼란에 빠지거나 적응한다. 결국 개인성을 잃는다.
세상을 잘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돈을 벌려면 감정은 버려야 한다. 타인은 오직 이용가치가 있는지로 분류되고 다룬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동한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은 그런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고 보편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가?'라고 영화는 되묻는 듯하다. "죽을 때 곁에 돈만 남는다면 그렇게 가난한 사람도 없을거야."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어떤 방향으로 향해야 하나. 영화가 주는 답은 감정적 교류, 느슨한 연대이다. 상대의 우위에 서기 위해 치열하게 속고 속이는 게임 말고, 같은 소파에 동등하게 앉아 투명한 규칙을 공유하는 그런 게임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에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