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이 들어서면서 정신없는 시간이 왔다. 가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가고, 겨울은 예의없이 성큼도 다가온다. 천천히 단풍잎이 물들어가는 시간들이 언제나 허겁지겁 귀 옆을 스쳐지나간다.
11월에는 연말 정산을 한 번 해야한다. 1년 간 잘 살았는지에 대해서 11월에 정산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12월은 캐롤이 정신없이 울려퍼지고, 다가오는 행사차 기분이 들뜨기 때문에 정산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모든 일은 미루지 않고 시작해야 제맛이다.
스스로를 돌이켜본다. 올해 가장 열심히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계획한 일은 얼마나 해내었는지를 11월에 돌이켜봐야, 30일 남짓 남은 시간 동안 갈무리라도 할 수 있다. 365일은 얼마나 길면서도 빠른지, 시간은 어떻게 이렇게 쏜살같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지.
날마다 날마다 아이의 손톱이 자라는 만큼이나 나도 조금씩 열렬하게 자라고 있다. 아이의 손톱을 깎을때마다, 내 네일아트를 지울때마다 항상 생각이 든다.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럴 때마다 글을 조금이라도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써서, 사진을 찍어서, 남겨서 정말 다행이라고. 사정없이 흘러가는 나날들과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들이 정신없이 섞이더라도, 잠시 한번 멈춰서 숨고르기 하는 11월이 있기 때문에 마구마구 찍어둘 필요가 있다.
연말 정산을 할 때 나만의 루틴이 있다.
나 혼자만의 대종상 시상식을 연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엮이는 사건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나름 다사다난(?)한 한 해에 대한 시상식을 여는 것이다.
한 해의 빌런상
한 해의 멘토상
한 해의 영감상
이런 것들을 한번 싹 훑고 나면 나만의 연말정산이 나름 정리된다. 게다가 항상 연말정산에서의 영감상은 항상 정해져 있다. 바로 나의 아이. 아직도 나의 가장 어린 스승님이자 가장 되바라진 (역할)모델로서 열심히 어필하고 있는 아이는 나의 뮤즈니까.
이렇게 한 해를 정리하다보면 제일 쉬운 부분은 한 해의 빌런을 뽑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부분은 멘토를 뽑는 일이다. 빌런은 마음 고생을 3주 이상 시킨 사람, 멘토는 내게 잊혀지지 않을 도움을 준 사람인데 원수와 은혜 모두 바위에 새기는 소인배인 나로서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원수는 이미 11월이면 답이 나와있고 유병장수를 빌며 거리를 두자는 결론까지 얻어낸 경우가 많지만, 도움을 준 사람은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도움을 준 사람들 사이에서 딱 한 명만 골라 기프티콘을 발송하는 그 모든 일들이 얼마나 고민되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끝까지 고민하고 연말정산을 하고 나면 뿌듯하다. 365일이라는 한 해를 잘 살아낸 것 같기도 하고, 무탈하게 지내온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났는데도 아직 1년이 30일이나 남아있다는 점이 마치 꽁으로 시간을 사는 듯하게 만든다.
아직까지 한 해의 연말정산을 하지 않은 만백성에게 고하노니, 슬슬 연말정산을 하셔야 할 시기일 겁니다. 이제 곧 또, 새로운 한 해가 우리 옆에 슬그머니 다가오거든요.

김작가
회사원
A만 인정받는 세상 이야기 속에서 B안을 끊임없이 만들고자 하는 김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