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2025. 11. 18by오자히르

‘Authentic’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진정한, 진짜의, 정통의’를 뜻하는 이 단어는 쉽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운다'는 고대 그리스어 ‘authentikos’에서 유래했다. 본질에 가깝고 스스로에게 진실하며 믿을 수 있는 것. 세상에 흔하지 않아 더 편애하는 단어다. 


2025년 11월 9일, 제42회 아테네 마라톤이 열렸다. 결승선에 ‘Athens Marathon. The Authentic’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나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으니까. 기원전 490년 고대 그리스 연합군이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 후, 아테네까지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달린 거리. 2,500년 전 그 거리를 뛰는 풀 코스다. 마라톤의 발상지답게 '마라톤'이라는 도시에서 출발해 '파나티나이코 경기장'까지 달린다. 

 

남편의 열한 번째 풀 코스 마라톤. 아테네 마라톤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2018년에는 중도 포기, 2023년에는 완주했으나 목표기록 실패, 2025년에는 순조롭게 3시간 24분으로 완주했다. 매번 출장길에 혼자 뛰었기에 사진 한 장 없었는데, 올해는 가족이 직접 응원할 수 있어 기뻤다. 

 

10km부터 32km까지 계속 오르막길이다. 과거에 두 번 실패한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날씨인데 다행히 구름이 햇빛을 가려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원하는 묘비명처럼 '적어도 한 번도 걷지 않았다'. 결승선이 있는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은 기원전 4세기 고대 올림피아 경기가 시작되고,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최초로 열린 곳이다. 끝없는 오르막길을 지나 이곳에 들어설 때 기분은 어떨까. 응원하는 나조차 역사의 일부가 된 듯 뭉클했다.

 

달리기는 가장 정직한 운동 같다. 운이란 없고, 돈으로도 살 수 없으며, 인공지능도 대체 불가능한 영역.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끝까지 버티는 힘, 스스로를 믿는 힘은 오직 내면에서만 나오니까. 

 

꾸준함의 힘은 복리로 쌓이나보다. 점점 편안해지는 레이스, 완주했다는 성취감,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발견하는 기쁨.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 순간 갑자기 성장한 자신을 마주한다.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를 만나는 건 매우 근사한 경험이다. 

 

작년 보스턴 마라톤에 응원하러 갔을 땐 젊은 러너들의 활기찬 분위기가 좋았다. 올해 아테네 마라톤에서는 40~70대 러너들의 단단함이 인상 깊다. 여유로운 눈빛과 자세, 젊을 땐 가질 수 없는 강인한 우아함. 스스로 한계를 깨본 사람들만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73세에 마라톤을 시작한 어느 할아버지는 12년째 아테네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감사한 것은 아주 오래전 남편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어느 가족이다. 보스턴 마라톤 참가 겸 미국 가족여행을 다녀온 지인을 보고 남편은 버킷리스트에 적었다고 한다. 작년 그 꿈을 이루었고, 이제는 상상도 못 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와 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빛나는 아테네 마라톤처럼 Authentic한 삶을 살고 싶다. 진정한 나 자신으로, 진짜 삶을, 진실하게 살아보고 싶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고, 따라올 수 없는 유일함이라는 무기. 자기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고 소중히 가꾸는 사람은 얼마나 눈부신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2.195km 달리는 남편을 응원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오자히르

번역가

단순한 삶 속에서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