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초여름과 핀란드의 따뜻한(?) 더위를 보내고 8월부터는 긴팔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한다. 이번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기록을 하다 보니 여름이라는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구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2025년 여름에게 안녕을 고하며…여름이어서 좋은 것들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 여름비, 소나기:
여름이 되면 소나기가 자주 떨어지는 것은 이곳 헬싱키도 마찬가지이다. 10여 년 전 중국 광저우에서 살 때는 소나기라고 하기엔 무서운 호우가 갑자기 쏟아졌었는데 출장을 다녀오다 차가 물난리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 적이 많다. 아무튼 오도 가도 못하는 차와는 다르게 여름의 소나기는 나에게 자유 같다. 날이 따뜻하니 마음껏 맞아도 되는 산뜻한 비. 오히려 더울 때 소나기가 있어 반갑다. 첫째아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우리는 장화를 신고 비를 맞으러 나갔었다. 혼자 있을 땐 비가 오면 커다란 숲으로 조깅을 하러 갔었다. 비에 흠뻑 젖으며 뛰는 사슴인 양 나는 흙냄새와 비 냄새를 즐기며… 소나기에 동반되는 천둥번개도 낭만적이다. 다만 나는 실내에 있어야 하지만…
## 더울 때는 냉면 말고 먹고 싶은 것이 없다:
6월 내내 한국에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알맞게 더운 더위였는데 사람들은 덥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는 몸이 찬 편이라 더위를 몸속 안까지 끌고 들어오지 못한다. 몸 안에 아이스팩이 있는 사람처럼.
제주에 갔을 때 일이다. 저녁 대여섯 시가 넘으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이 고깃집밖에 없었다. 가족들하고 외식을 하러 가면 채식주의자인 나는 구운 야채나 냉면밖에 먹을 것이 없었다. 고깃집에 나오는 시큼한 냉면을 몇 그릇을 비우고서는 '고깃집은 이제 무리다' 깃발을 들었다. 그 다음부턴 두부만 잔뜩 넣은 김치찌개 있는 곳을 찾았다.
그래도 날이 더우면 다시 냉면이 생각난다. 콩국수도 있긴 하지만 냉면만큼 당기지는 않는다. 채수로 맛을 낸 냉면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냉면만 '봐주고' 먹는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꼭 '평양냉면'을 먹어보기로 했건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먹어보고' 싶기만 하다. 평양냉면 말고 옥천냉면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내년에는 그 냉면을 꼭 먹어보고 싶다!
## 복숭아:
여름만 되면 복숭아를 찾는다. 한국에서도 요즘 볼 수 있는 납작 복숭아는 처음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는데 납작해서 먹기도 편하고 당도도 보통 복숭아와는 달랐다. 여름이 되면 다들 핀란드산 딸기나 완두콩을 사먹는 재미에 빠지지만 나는 파라과이산 혹은 스페인산 복숭아 사기에 바빠진다. 복숭아도 보니 딱딱파가 있고 말랑파가 있는데 나는 중간을 좋아한다. 우리 첫째는 완강딱딱파여서 조금이라도 부드러우면 몇 번 눌러보고는 나에게 내민다. '이거 물렁해잖아요.' 귀엽고 어설픈 한국말로…
이번 여름도 복숭아는 내가 거의 다 먹었다. 아침. 간식. 저녁으로! 내일 또 먹어야지!
여름이라고 신나서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알록달록한 액세서리들이 생각난다. 지금 보면 쉬어 빠진 라면 같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음 여름을 위해 내버려 두자!
여름하면 즐길 거리 투성이다. 야외에서 하는 운동, 핀란드의 사우나와 백야, 핀란드식 바비큐, 엄마가 담가서 고이 모셔온 매실 엑기스, 한국의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수다 떨기 등…
아무튼, 여름의 작가 김신회님의 말처럼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