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한다, 우리집 청소년!
아들의 입가에 아기 펭귄 솜털 같은 귀여운 수염이 보송보송 자라났다. 토실한 두 볼 사이에 놓인 그 엉뚱하고 가지런한 털. 그것은 어디로 보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수염’이란 것이었으나 어쩐지 여태껏 내가 알아온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수염이라. 긴 수염, 짧은 수염, 따가운 수염, 텁수룩한 수염, 멋진 수염, 요상한 수염……. 수염이란 녀석에게 붙일 수 있는 관형사에 딱히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수염’이라니 아무래도 그건 좀 어색하다. 그러나 아들의 달라진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그저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남자의 수염을 귀엽다고 느끼는 최초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 본격적으로 맞이한 우리집 아이의 사춘기는 풍문으로 들어온 아찔한 이야기들과는 달리 생각보다 귀여운 면모가 가득하다. 내 검지 두 마디만 하던 발이 내 발 사이즈를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바닥이 여전히 아기 발바닥처럼 보드라운 것도 귀엽고, 팔다리에 난 털은 이제 솜털이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굵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성만은 어린아이처럼 탱글탱글 한 것도 귀엽다. 그러나 사람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면면이 모두 귀엽기만 할 리가 없지. 단 하나, 요 입.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때로는 무심하고 드물게는 격한 말들이 수많은 귀여움을 단번에 압도하는 요즘이다. 와, 정말 사춘기가 오긴 왔구나!
빠르게 자라는 아이의 속도를 미처 다 따라잡지 못한 탓에 인생 1회차 엄마는 오늘도 버벅거린다. ‘우리 아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사춘기 같았으니 진짜 사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 ‘이 정도 사춘기는 괜찮은데? 나 제법 잘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오만한 나. 막상 본격 사춘기를 마주하고 보니 결코 쉽지가 않다. 자칫 삐끗하면 사이가 멀어질까 싶어 매순간 퇴고하듯 말과 감정을 고르다가도 ‘이건 좀 아니지!’하며 감정이 훅 솟아오를 땐 버럭 화를 내기 십상이다. 내 마음에 울산바위 하나 들어앉힌 듯 묵직하고 뭉근하며 넉넉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건만. 에라, 이번 생에 그런 아름다운 엄마가 되긴 글렀다. ‘나의 육아 목표는 너의 독립’이라 늘 말해왔지만 세상천지에 ‘독립’이란 말이 붙은 일 치고 절대 쉬운 일이 없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린 내 탓이다.
“난 남편이 지긋지긋하고 미울 때일수록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이럴 때, 오래전 고등학교 친구가 했던 이 말은 요즘 나에게 마치 일종의 지침서처럼 느껴진다. 단지 그 대상이 남편이 아니라 아이일 뿐. 진짜 명언은 프랭클린 다이어리 상단 문구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일상 언어 속에 있는 법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숨 쉬듯 자주 해온 나이지만 너울성 파도 같은 아들의 사춘기 앞에선 사랑한다는 말조차 목구멍 속으로 꾸역꾸역 삼키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밀어닥치는 파도에 맞부딪쳐 산산이 흩어지더라도 기어코 역방향으로 파도를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부글거리며 솟구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아이의 귀여움에 매달린다. 귀여운 눈, 볼, 손, 어디 하나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는 아이 몸의 세세한 구석구석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리고 마침내 차마 사랑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의 싹이 슬쩍 고개를 내밀면 반드시 입 밖으로 꺼내 말한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지만 솔직히 너, 참 사랑스럽다고. 엄마 지금 화가 엄청 났는데 그래도 널 사랑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다고. 우리 잠깐 마음 좀 가라앉히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전 세계에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법에 대한 책이며 영상이 참 많다. 그러나 잔뜩 짜증이 난 아들에게 어디선가 배운 대로 ‘그런 마음이구나’라는 공감의 말을 전하자 그 일곱 글자가 너무나 길게 느껴져 더 짜증이 난다는 답만 돌아왔다. 자신이 화가 났을 땐 오직 ‘응’ 한 글자로만 대답을 해주면 좋겠단다. 사춘기는 이전 육아 기간 동안 쌓인 상호 경험과 감정의 누적분을 초단기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처럼 맞이하는 기간이다. 아이의 반응을 보니 아마도 나는 그간 잔소리를 너무 길게 하긴 했나 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불안도가 높은 엄마이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한들 천지개벽하듯 ‘잔소리 0’을 실천하기는 어려운 사람인 것을. 그저 7번 할 잔소리를 4번 언저리로 횟수를 가능한 줄이고, 최대한 섬세하게 말할 타이밍을 살피고, 어조와 단어를 가다듬을 수밖에. 아이에서 청소년이 되었고, 곧 성인이 될 준비를 하는 우리 아들과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게 언제 조언을 건네야 하고 개입해야 하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과정이 이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부딪쳤을 때, 내가 가진 유일한 해결책은, 여전히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 아들 너의 마음이 사실은 너의 말과는 달라서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제대로 전하는 것. 짜증 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참 많겠지만 너의 뒤엔 항상 이 엄마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 십 대 시절 어린 내가 참 간절하게 바라고 원했던 것들을 이제는 엄마가 된 내가 아들에게 전한다. 아들과 나는 닮은 점이 많지만 서로 참 다른 사람이라 내가 원했던 것을 아들은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에는 힘이 있으니까. 우리가 한 번씩 크게 부딪치고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소중한 너의 과정과 이 시간을 나는 정말 귀하게 여기고 있노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으니까.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아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는 나에게 ‘엄마는 내 친구야.’라며 단 일곱 글자로 내 마음을 아주 요동치게 하는 우리 아들. 가끔은 많이 열받지만 그보다 아주 깊게,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환영한다, 우리집 청소년.
캥거루
프리랜서
원가족 안의 나를 다시 들여다보며 더 단단한 오늘을 만들어가는 캥거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