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요.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두세요!”
(Kids are not supposed to be what we want.
Let them do what they want!")
지난 여름방학, 아이의 수영 강습에서 그리스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첫 수업이라 부모가 참관하게 되었는데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돼”라며 자꾸 개입하려는 부모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보내셨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올해 전 세계 베스트셀러 책《렛뎀 이론》이 생각났다.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중요한 나 자신의 행복과 목표, 인생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책이다. 일상에서 실제로 ‘let them’이라는 말을 들으니 읽어보고 싶어졌다. 나의 부족한 행동을 반성하면서.
요즘 ‘시간의 유한함’을 자주 느낀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타지에서 육아와 일, 집안일까지 모두 혼자 해낸다는 건 체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텅 비워 내려 노력한다. 중요한 것이 새로 들어왔을 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도록. 엄마가 된 후 깨달은 한 가지 진실이 이 책에 나와 있어서 반가웠다. 그건 바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고른 책을 읽었으면 좋겠지만,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스스로 문제집을 풀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노는 게 더 좋을 나이다. 어른도 매일 루틴을 지키는 게 어려운데 아이도 생활 계획표를 지키는 건 당연히 쉽지 않다. 다행인 것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면, 놀랍게도 아이는 조금씩 변화한다. “이거 해야지”라는 말 대신 “괜찮아?”, “오늘 기분이 어때?”, “이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공감해 주고 믿어 주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지켜보되 간섭하지 않고, 기다리되 포기하지 않으며,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작가 멜 로빈스는 ‘대부분의 성인은 어른 몸 안에 여덟 살짜리 아이가 산다’라고 말한다. 이 사실만 유념해도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 누구나 비밀스런 슬픔을 가지고 있으니, 타인을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내 옆의 친구, 남편, 아이, 우연히 마주친 무례한 사람까지도.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문장에 공감했다. “자신에게 주는 사랑, 존중, 배려가 당신 인생에서 다른 모든 관계의 기준을 설정한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뒤쫓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존중하기로 선택할 때, 당신이 어떻게 대우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세상에 보내게 된다.”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지 말고, 자신을 더 아끼고 돌보고 사랑하라고.
책《사람을 남기는 사람》에서 정지우 작가도 말했다. “타인을 비밀스러운 존재로 두는 것 자체가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다. 당신에게는 비밀이 있어서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 당신이 누구든 섣불리 폭력적으로 규정하기보다 당신을 당신인 채로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처럼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들의 감정과 행동을 내 몫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나의 말과 행동, 행복에 집중하는 것은 훨씬 더 성숙한 태도다.
지난 20대와 30대를 되돌아보면 나는 얼마나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나. 덕분에 시행착오를 거쳐 수련하듯 노력하는 몇 가지가 생겼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기. 상대도 좋은 의도였을 거라고 생각하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유념하기. ‘당신이 옳다’고 말해주기. 내면의 평온을 지키기. 나의 반응을 선택함으로써 인생의 주도권을 되돌리면 삶이 한결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누군가가 나를 떠나도 개의치 않는 마음.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은 이런 게 아닐까.
최근 남편이 “Let it go 책 나도 한 번 읽어볼게. 어디 있어?”라고 나에게 말했다. 이해와 수용의 마음으로 ‘요즘 많이 바쁘구나'라며 푸핫 웃으며 받아들였다. 통제할 수 있는 건 나의 반응이니까. 정리해도 금세 어수선해진 책상을 보며 “아빠는 왜 정리를 안 할까?” 푸념을 하자 아이는 “이유가 있겠지. 그냥 내버려두자”라고 말했다.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사랑과 존중의 마음, 그리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것. 타인을 있는 그대로 믿어 주는 '따뜻한 무관심'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오 자히르

오자히르
번역가
단순한 삶 속에서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