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우당 탕당 개학홍수, <엄마의 리즈 시절이 지나간다!>

2025. 09. 24by에스텔

 

#27  프라하 육아 일기

우당 탕당 개학홍수, <엄마의 리즈 시절이 지나간다!>

 

 

”이러려고 개학했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은혜가 끊이지 않는 엄마의 생활은 방학은 방학대로, 개학은 개학대로 우당 탕당 흘러간다. 개학하자마자 홍수같이 밀려드는 모르는 얼굴과 아는 얼굴.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상담과 메일 폭탄으로 보내는 첫주였다. 담임선생님과 신학기 상담 전 자료들을 주고받았고, 한국인 신규 가족에게 한국어 안내 메일을 돌렸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일정에 방학 내내 밥하느라 바쁘던 나는 개학 후엔 종일 학교에서 살았다. 학부모 운영회 일과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정작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누워있고 싶다. 그게 소원. 개학 이후 한 달이 되는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일정들이 이어졌는데, 잘 정돈 되었던 방학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었고, 어수선하고 새로운 것들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정말 난리가 났다. 모든 일정을 대부분 마무리하고 아이들이 적응할 무렵에 둘째와 나는 사흘을 앓아누웠다. 그만큼 새 학기가 주는 부담은 학부모와 학생에게 무거운 것이었다. 올 학기 바뀐 게 있다면, 학교 운영위원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미국식 국제학교 특성상 커뮤니티 기반으로 학교가 굴러가기 때문에, 학교 공동체, 국가 공동체, 학부모 공동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간다. 그 속에서 한국인 학부모로서 학교에 이바지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중요한 건 이런 기여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초기 적응을 돕고, 학교의 기본적인 소식들과 학부모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허브들을 소개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학부모 트립을 계획하고 조직하는 일도 하게 되었다. 여전히 언어와 문화 충돌로 정신이 혼미하지만, 새로운 도전이 있는 삶은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난 이런 사람이니깐.

 

개학 첫날은 뉴커머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신규 가족을 학교에 초대하고 새로운 학년의 적응을 돕는 행사다. 공식적인 새 학기의 등교는 화요일부터 였지만, 벌써 부터 학교에 도는 활기에 덩달아 즐거웠다. 나는 뉴커머 오리엔테이션의 봉사자로 참여해 신규 가족의 등록과 안내를 도왔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학교를 배회하며 놀았고, 신학기 반 배정표를 확인하러 다녔다. 안내를 마치고, 학교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설명을 찾아 듣고, 둘째와 손잡고 선생님들과 인사를 했다. 우리는 중고 신입생이다. 이미 첫째가 학교에 다니고 있고, 둘째도 학교를 매번 들락날락하기 때문이다.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없지만 학교 행사 진행방법은 흥미로웠다. 전체 신규 가족들에게 극장에서 학교 소개를 하고, 각 초등, 중등, 고등 신규 가족은 각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학교의 전반적인 시스템과 교육과정에 대해 듣는다. 이때 학부모와 교직원 간의 자연스러운 인사와 상호소통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입학식 같은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고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다. 첫째가 입학할 때는 신입생 OT를 못했기에, 둘째 덕에 이런 행사의 주인공이자 봉사자로서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설렘 가득한 둘째는 자신이 이제 유치원을 벗어나 오빠가 다니는 큰 학교에 학생이라는 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작은 유치원에서 너무나 좋은 친구들 따뜻한 선생님과 지내던 아이가 큰 학교로 간다니,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체코에 살 때부터 둘을 다른 학교에 엄마의 고생한 내가 꿈꿔오던 순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첫째는 국제학교, 둘째는 한인 유치원을 거쳐 국제유치원을 다녔다. 그리고 그 국제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오빠가 다니는 국제 학교로 갔다. 물론 적응에 대한 건 걱정이 없었다. 같은 유치원의 친구들이 같이 학교에 가기도 했고, 하여튼! 둘째는 걱정이 안 된다. 넌 강해져야 해!

 

대망의 개학 날엔 새 학년의 활기로 가득한 학교로 걸어들어 갔다. 학교 입구의 First day of school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자의 교실로 들여다 보내고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드디어 개학이다. 긴긴 여름 방학을 지나 드디어 당도한 곳. 나는 자유야! 는 무슨 자유가 아니었다. 개학하자마자 학부모 모임, 운영위원회 회의, 신학기 상담이 이어졌다. 진 빠지는 일정, 온종일 영어로 이야기하는 날도 있었고 가까스로 방학을 완주했으나, 다시 전력질주 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하며 뱅뱅이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하루를 보냈다. 학부모 웰컴 백 커피 모닝, 신학기에는 늘 있는 학교 학부모 행사에서 오랜만에 보는 학부모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여름휴가 이야기를 나눴다. 스페인 별장에서 한 달 내내 지겨운 여름을 보냈고, 친정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왔다기도 하고, 각자의 신 나는 휴가를 이야기하면서 고단함을 토닥이기도 하고 멋진 휴가에 엄지를 지켜 올렸다. 다들 반갑고 후련한 마음에 얼싸 안았다. 얼마나 긴 여름방학이었는지, 엄마들 다들 고생 많았어요! 

 

일주일 뒤 학부모 상담이 이어졌다. 상담 일정을 잡고 그날은 아이들 학교 일찍 마치는 날. 선생님께서 미리 보내주신 질문지를 촘촘히 작성하고 우리 아이가 이루고 싶은 것, 엄마의 기대 등 사전 질문지를 작성하고 담임선생님과 서브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다. 아이의 성격적 특징과 가정에서 하는 노력과 협조할 부분을 사전에 선생님과 긴밀히 상의하는 시간인데, 선생님께서 아직 아이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만큼, 학부모가 아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눴다. 우리 아이가 어떤 점이 강점이고, 어떤 부분에서 성장을 이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정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들. 어떻게 학교와 가정이 협력하여 아이를 이끌어 갈지에 대한 대화였다. 선생님과 이제 3학년이 된 첫째의 등교하원 독립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집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 국제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부모의 관계라기보단 상담자와 조력자 관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학교와 가정에서 협력하는 평등한 대화가 이어졌다. 첫째와 둘째 상담을 두 차례 하고 나오니 진이 빠졌다. 절로 나왔다 외국생활 시작해서 혼자서 상담을 이렇게 하다니, 세상에,,난 정말 못할 일이 없을 거야. 생존을 위한 절절한 투쟁이 아니면 이게 뭐란 말이야. 아이들이 단계를 밟아 갈수록 엄마도 성장해 간다. 나도 하나하나 계단을 밟으면서 지치기도 숨차서,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아이의 뒤를 밀기도 하고, 앞서 올라가기도 하고 우리는 밀고 당기기를 하며 각자의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른다고 더 쉬워지는 건 없다. 어디 인생이 맘처럼 쉬워진 적이 있었나? 사실 둘째가 이번에 첫째의 학교로 옮기면서 등교는 비교적 쉬워졌지만, 하교는 더 어려워졌다. 학교생활을 하는 둘째의 스케줄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하교 시간에 늘 저글링 하는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 둘의 픽업 장소가 달라서, 이쪽에서 픽업하고 저쪽으로 뛰어가서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둘째의 팔을 잡고 끌고 나와야 했다. 아이들의 하교 스케줄을 다시 짜야 했고, 방과 후 활동이 확정됨에 따라 학교 외 활동을 잘 끼워 맞춰야 했다. 그리고 고달픈 며칠이 지나서 이어진 첫째의 독립선언. 3학년이 된 첫째는 공식적으로 혼자 등하교가 가능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위치추적 어플을 깔아보기도 하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여주면서도 불안했다. 등하교 독립 전에 몇 번의 연습을 해보기도 하고, 버스 타고 등하교, 자전거 타고 등하교 등등 연습하고 내비게이션을 보고 축구장을 찾아가는 연습도 시켰다. 아이 눈에도 내가 불안해 보였는지, 아이가 하루는 지나치게 설명이 많았던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나를 믿어주세요.”

 

불안 세대에서는 지금 아이들은 가상 세계 중독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살고 있고, 중독을 예방하려면 아이가 현실 세계에 살아갈 있도록 독립심을 키워주라고 했다. 혼자 있는 것들이 많아질 수록 아이들은 가상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고 살게 된다고 말이다. 별안간 나를 믿어달란 아이의 진지하고 깊은 말에 눈물이 뚝뚝 흘렀는데, 이런저런 준비를 해봐도 그건 아이를 위한 아니라 나를 위한 준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아이는 준비가 되었지만, 내가 준비되지 않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이의 독립을 위해 한걸음 물러서며, 아이가 스스로 해낼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래 너는 삶의 주인이고, 너는 결정할 있는 존재다. 이제는 세상이 아이를 가르칠 때구나. 마음에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9년이 걸렸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으로 혼자 나갈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아이는 등하교 독립을 해버렸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나의 집착이고 나의 욕심이니, 그것 그대로 떠내려 보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싱겁게도 독립 하루 만에 편한걸 이제 했네! 싶었다. 내가 그렇지. 하하하. 아이는 믿는 만큼 자라고, 믿는 만큼 도전한다. 아이는 발생하는 돌발상황 속에서 배워나갈 것이다. 그렇게 국제 학교에서 봤던 태도가 훌륭한 형들 처럼, 그렇게 멋진 형으로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이가 학교 선생님께 엄마의 이름을 말하고 전화를 빌려 있는지 요청했다고 한다. 숫기 없어서 말도 못할 알았더니, 아이가 어른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거라 믿는다. 이렇게 초등 ! 개학은 했고, 첫째는 한발짝 엄마 품을 떠나고,  리즈 시절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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