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건 사과. 기차는 빨라를 이해하기 시작할 무렵.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엄마 닮았으면 예뻤겠네"라는 말을 오조 구억
삼천 번쯤 들으면 '가정법'에 회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도레미부터 은파까지. 체르니 기초부터 50번을 완주하기까지 걸린 10년.
그동안 나는 건반보다 피아노 위에 붙박이처럼 자리한 유럽산 세라믹 도자기를 더 많이 노려봤다. 엄마의
자화상 같은 도드라지는 이목구비로 일평생을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 축배를 들어 올린 손가락의 90도 각도마저 일말의 흐트러짐 없는 도자 인형은 죄가 없다.
지금도 닮은 건 목소리와 식성뿐이지만 나는
일편단심 엄마를 흠모하는 해바라기로 자랐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꿈을 물을 때 엄마랑 결혼할 거라 외치던
꼬마였다. 증발해 버린 외가의 화려한 DNA를 평생 저주하며
엄마의 큰 눈과 높은 콧대를 선망했다. 삐뚤어진 자격지심은 이성 판단의 일 순위를 외모로 설정하는데
혁혁한 주춧돌로 켜켜이 쌓였다. 대쪽 같은 취향과 함께 사이비 같은 믿음이 한편에 자랐으니. 나의 2세는 남편의 외모 더하기 한 대를 걸러 나온다는 (나를 스쳐 간 외가의) 우월한 유전자의 몰빵일 거라는 (근거 없는) 맹신이었다.
한창 세포 분열 중이던 태아 시절,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최대 관심사는 완연히 나뉘었다. 시가는 성별, 나는 실물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는 입체 얼굴 초음파. 조막만
한 손으로 양 볼을 감싼 와중에도 또렷하게 보이는 건 나와 복제 수준인 마늘코! 코만큼은 아빠를 닮아야
한다가 태교의 마지막 멘트였거늘. 지독하리만큼 대를 이어 존재감을 뿜어내는 친가의 독보적 유전자에 치를
떨었다. 부들부들.
아빠 닮은 예쁜 딸을 노래하던 과거의 내가
민망할 만큼 (낳아 보니) 날 닮은 아들은 발톱에 낀 때마저
사랑스러웠다. 메추리알 같은 양 볼, 물만두 같은 콧방울, 체리 같은 입술. 속싸개로 꽁꽁 싸매도 내 엄지손가락만 한 발 하나는
왜 꼭 내놓고 자는 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뽀뽀를 퍼붓다 입술이 부르텄다. 그만 물고 빨라고 주변에서 아이를 떼어갈 만큼 유난스러운 뽀뽀 괴물로 진화할 줄이야.
아이가 씌운 콩깍지 렌즈는 똑같은 하루를 180도 다르게 바라보는 마법을 부린다. 시력이 수명을 달리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영혼의 안구에 이식되었으니, 도리가 없다. 뽀뽀로
과식하다 그토록 싫어하던 내 코마저 사랑하게 되어 버렸으니. 상상도 못한 반전이 까꿍 고개를 들이민다. 오늘은 엄마 내일은 아빠. 아이는 변검처럼 달라지는 얼굴만큼 키도
생떼도 쑥쑥 자란다. 그 시간을 거치며 나는 내 안의 아이를 마주한다.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뒤늦게
달래본다. 비로소 배워간다.
youme
너와 나, 합해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