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유학가기 전 까지 살던 집에 살고 계시다. 내가 한국을 떠난 후 이 집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사시다가 아빠가 퇴직하면서 다시 이사 오셨다. 다시 그곳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리모델링을 계획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설랬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 한국에 달려가 공사 현장을 지휘하고 싶었다. 그곳은 한국의 모든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이자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산 집이었다. 약 12년만에 그 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오랜만에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은 깨끗하게 정돈 되었지만 공간에 자리 잡고 있던 추억들은 그대로였다. 평소라면 복잡하고 시끄럽다고 하는 거리들도 익숙했고 그 속에 편안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나는 익숙한 곳을 집이라고 느끼는 걸까? 추억이 많이 담겨 있는 곳을 집이라고 느낄까?
이번 한국 방문 때에는 제주에서 2주 정도 머물렀다. 일주일은 깔끔하고 야외 자쿠지가 있는 곳에서 그 다음 일주일은 제주에서 정원을 10년 넘게 가꾸어 온 사장님과 조이라는 강아지가 함께 사는 곳에 머물렀다. 둘 다 에어비엔비의 평점이 꽤 높았다. 남편과 첫째 아이는 자쿠지에 넓은 공간이 있는 공간을 선호했다. 나는 사장님의 손길들이 느껴지는 두번째 집을 선호했다. 커다란 정원에서 가꾸어 온 꽃들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고 직접 키운 채소나 먹을꺼리도 나누어주셔서 좋았다. 무엇보다 흙집이라서 머무는 내내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과의 편안한 관계 그리고 선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첫번째 지낸 곳은 ‘숙소’라는 생각이 두번째 지낸 곳은 ’집‘이라는 느낌이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 꺼야’ 라는 노래 가사는 아주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있는지 집에 대해 생각 할 때면 멜로디와 함께 떠오른다. 정말 집에 가고 싶으니까. 얼마전 어떤 인플루언서가 자기는 베를린에서 16년 그리고 지금은 이태원에서 살고 있는데 아직도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는 영상을 봤다. 영상에 공감은 물론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꺼야’라는 구절이 멜로디와 함께 떠올랐다. 내가 느끼는 집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집이란 첫번째로 편안한 사람, 환경, 분위기가 우선일 것 같지만 꼭 그런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과 환경이 갖추어져도 자신이 평온하지 않으면 그 어느곳에서도 느낄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마음이 평온하면 어느 곳에서도 ’집’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 집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해보고 싶다.
여러 달을 육아를 비롯해 일러스트와 작품 편집에만 집중했더니 글을 쓰는 머리의 한 부분은 많이 퇴화된 것 같다. 하얀 바탕화면에 커서가 깜빡 거리는 것을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냐 하면 내가 지금 뭐하려고 이러고 있나도 까먹었을 정도이다. 하얀 바탕화면에서 나는 집이 어딜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재 앉아 있는 지붕 있는 이 공간도 역시 남편이 유년시절을 보낸 가족 별장이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밤 11시, 핑크색의 아름다운 노을에 바다가 반짝인다. 이곳을 무척 좋아하는 것을 보니 이곳이 남편의 ‘집’ 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얀 바탕화면에서 얻은 당신에게 집은 무엇인가요? 라는 물음에 나는 어쨌든 나, 사람, 가족, 관계 이렇게 키워드를 추려봤다. 이것들 모두 마음의 평온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은가. 결국 집이라는 의미는 마음의 평온일까? 내가 찾은 근접한 의미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쌩뚱맞지만 글을 쓰려고 하얀 화면을 보고 있으면 방어벽이 올라 서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화 캐릭터 장착. 나 같지 않은 이 캐릭터로 글을 쓰려니 참 어렵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면 이 캐릭터는 10분도 안되 죽고 만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 앞에서 자연스래 솔직해 지는 나의 모습도 좋다. 하얀화면을 보고 있자니 불특정 다수에게 선언문이라도 쓰는 느낌일까? 괜히 비장해지고 진지해진다. 나 답지 않다. 아니 그 불편함까지 나라고 받아들여야 글도 결국 ‘집‘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아니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글은 계속해서 삶에서 가시 방석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글이든지 집이든지 아무튼 글자수가 짧을 수을 수록 생각의 공간을 많이 내어 주는 것 같다. 집도. 글도. 삶도.
쿠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