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프라하 육아일기 <모든 시작과 마무리에 뜨거운 박수를>

2025. 06. 24by에스텔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성장하는 것. 버텨내는 것 모두. 한 때는 대단한 것을 해야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더욱. 버티고, 살아가고,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게 아니다. 학부모로 살면서 가장 감사한 일은 누군가의 성장과 버팀을 가시적으로 보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도 학사 일정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며, 학기와 방학에 맞는 리듬으로 전환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계절마다 시간 구간이 생기고, 시간 구간이 생기는 것은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보았을 때, 챕터를 만드는 것과 같으며, 시간의 유한함을 알고, 구간별로 스스로 미션을 부여하고 또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흘러가는 대로 스스로 전환하고 배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시험을 망쳐도 시간은 흐르고, 다음 시험이 있다. 그 구간별로 자신의 변화를 어림하며 몸과 마음이 성큼 자라게 되는 것같다. 학생일 때는 몰랐던 것들을 학부모가 되니 알것 같다. 그저 열렬히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하다. 이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는 학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등하교를 하며 아이들의 모든 것을 챙기며 함께 달렸던 학부모로서 그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

 

국제학교는 여름방학 전에 학년이 끝난다. 여름방학 전 학기말은 언제나 태풍을 정면으로 맞고 나아가는 듯하다. 한 해의 마무리가 여름이 라니, 여전히 적응이 안되지만 어쨌든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학교 행사가 무척 많다. 아이들 전시회부터 발표회 한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내는 결과물, 전시회, 컨퍼런스 등 학년이 끝나가면, 정신없이 휘몰아친다. 아이들 행사가 하루걸러 하루있고, 긴 여름방학 전에 밥한번 먹자던 약속을 해치우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학교 곳곳은 아이들이 한해 동안 만들어낸 결과물이 전시 되어 있는데, 그 복도를 지날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설픈 작품들이지만, 학교는 학생들의 작은 결과물에 무한한 박수를 받도록 한다. 평가가 아닌 열렬한 지지. 나도 그러한 시작이 있었고, 무한한 박수를 받을 때, 한 세계를 뒤로하고 알을 깨고 나아갔던 기억이 있다. 재활용품을 만들고, 자화상을 그리고, 로봇을 만들어내고 일련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가면서 자신을 탐구하고 세상을 탐구할 기회를 가진 것이 참 부럽기도하다.

 

 

“할거면 잘해야지. 제대로 해”

 

이 말은 틀렸다. 어렸을 때 가장 내가 많이 들었던 말이고, 아이들에게도 하는 가끔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쓰지 않는다. 수 많은 어설픈 시작을 열렬히 환영하고 격려하는 그들을 보면서, 용기를 가진 다는 것은 작은 것을 해보면서 단련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용기를 내다보면 조금씩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담력이 생긴다. 

 

 

 

“그냥 해봐도 괜찮아. 그냥 해보는 거야”

 

첫째는 1학년 동안에는 그림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과정을 훈련했고, 커뮤니티 교육을 받고 동네는 탐색하고 내가 소속된 공동체에 대해서 알아가고 각 구성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가고, 학생들은 각자 구성원 역할을 맡아 커뮤니티 박람회를 개최했다. 학부모는 게스트로서 아이들을 위해 행사에 참석했으며 반 아이들이 누가 누구의 엄마고 아빠인지 한 학년 동안 다 알게 되었다. 작은 사회를 체험하며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지켜준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유대감과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한 학기 동안 배운 과목을 부모님를 초대해 일대일로 설명해주는 날도 있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끌어나가는 발표회. 내가 어릴때 학부모 참관수업과는 전혀 다른,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 아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엄마아빠는 기꺼이 시간을 낸다. 다음 2학년 동안은 나의 역사와 가족 인터뷰를 통해서 내가 태어났을때 어땠는지, 엄마아빠의 첫만남과 나를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등등 가족인터뷰를 진행하며 탄생의 기쁨을 취재했다. 그 다음에는 행복한 삶에 대해 탐구했다. 잘자고, 잘먹고, 운동하고, 명상하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연구하고 그 방법을 학부모들에게 소개하고 체험하게 하는 행복한 삶 살기 박람회를 만들었다. 2학년 마지막에는 학교 정원 구석 식물과 자연에 대해 조사하고 영상을 찍고 투어 지도를 만들어 학교내 식물을 소개하는 투어를 진행했다.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준비한 투어를 체험하게끔 하는 가이드가 되었다. 첫째는 내성적인 아이지만, 내 앞에서는 눈을 빛내며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이 작은 도전과 성취가 나중엔 이 아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할 거름이 될지 누가 알겠느냔 말이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내 것으로. 아이들은 그렇게 차곡차곡 내실을 쌓아간다. 아이들의 공부는 국영수가 아니다. 아마 한국 학교 공부는 무척이나 뒤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속한 공동체, 가족, 그 속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이들은 자신의 뿌리를 탐구하는 과정을 초등 저학년에 경험했다. 무언갈 조사하고 만들어가고, 결과물을 내고, 말하고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이 해내는 프로젝트의 초점은 거기에 맞춰져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는 것. 조사하고 발표하고 소개하고 함께 만든다. 아직 작은 아이들이지만 자신을 탐구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연구하고 나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스무살이 갓된 친구들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건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대학을 졸업해서도 경험의 폭이라는 것이 너무나 좁았고, 그 경험이 책 속에서만 있었다. 실제로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배운 것들이 너무나 적었고, 실제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모르고 어른이 된건 당연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국제학교 학부모로서 ‘살아가는 법’을 아직도 배우고 있다. 나를 다루는 법, 행복하게 사는 법,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법, 가정을 운영하는 법,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번. 여전히 부딪히고 배워가고 있다. 삶을 통해 배우는 배움은 시간이 걸리지만, 온전히 내 것이라는 안정감이 있다.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시작을 응원받고 실패가 허락되는 아이들의 도전이 얼마나 값진지 모른다. 아이들도 대학의 문턱에서 내가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경험이 근거없는 자신감이 되어 원없이 스스로를 탐험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기를 바란다. 너무 늦은 것은 없으니. 우리는 모든 시작과 마무리에 뜨거운 박수를. 뜨거운 박수를 보내야 한다

 

 

 

 

 

에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