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게 될까

2025. 06. 24by김작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정통신문을 아직까지는 꼼꼼히 읽는 1학년의 엄마로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예회가 자원자에 한해서 열린다는 글을 보고 아이에게 물었다.

나가고 싶니?”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라 생각했던 아이는 의외로

절대로 싫어! 절대 아니!”

오역이 전혀 섞이지 않은 거절을 했다.

 

외향성이 거의 100%에 수렴하는 남편과 다르게

아이는 종종 남들 앞에서 나서는 자리를 거절한다

부끄럽다고, 부끄럽다고 한다.

 

최근, 육아휴직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남편을 위해서 아이와 함께 하는 등굣길을 영상으로 만들어준 적이 있다

아이와 남편이 그걸 보면서 만족하고 낄낄대며 웃었다. 엄마 더 올려줘, 더 만들어줘

나는 평생을 나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뭔가를 돕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떻게 아이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노출하고, 활발하고 활달할 수 있을까, 남편을 닮았나 신기했다.

 

반장해볼래?

투표로 선출되는 게 아니었고 내신에 한 줄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종종 선생님이 시키던 고3 반장 마저도 

나는 차렷, 경례 하는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게 싫어서 거절했었다

내 목소리가 왜 이리도 부끄러웠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아이도 그러려나 보다.

 

너 축구 잘 하니까 애들 앞에서 축구 하면 어때?”

아니야! 싫어!”

그럼 리프팅은 어때?”

창피하단 말야!”

 

최근에 아이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리프팅을 선보였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자기가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가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던 게 영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괜찮아, 네가 1학년 중에는 리프팅을 제일 잘할걸?? 했더니

그 때도 심장이 터질 뻔했어! 하면서 대꾸하고는 소라게처럼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다.

 

하긴, 나는 정말이지 남들 앞에서 뭘 뽐내는 게 지극히도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장 떨리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3분 동안 자기소개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아이에게 그걸 왜 못하냐고 강요하는 사람이 되다니 참으로 극성엄마가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못하니까 너는 해야해. 하는 그 극성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끌어다가 묻혀버리게 하는지를 많이 보았는데도.

 

나는 종종 생각하곤 한다. 앞에 나와서 시선을 끌고, 어디에 있을 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안타깝게도 그 사람들 안에 내가 들어갈 수는 없겠다고

그 소외감과 외로움이 가끔은 나를 무력하게 하지만, 대신 그 무력감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내가 여기 있다고 계속해서 외치는 방식으로.

 

아이도 나중에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외치게 될지도 모른다.

남들 앞에서 대단하게 합리적인 방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아이는 다른 무슨 방법을 짜내게 될까.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게 될까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요새 한 가지 커다란 확신이 있다

지금의 나는 아마 죽어서 데이터를 남기게 될 것이다.

 1TB보다 더 넘쳐나는 나의 조그만 핸드폰 속 데이터들로 하여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 알려주게 될 것이다.

 

삶의 대부분이 아이였던 과거와 달리 조금씩 내 삶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요즈음 

나는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항상 고민이다

소소하게 조금씩 하고 있는 것들이 나를 이루는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아이가 크게 x자를 그어버린 장기자랑 신청서를 눈 앞에 두고, 나는 나의 장기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선보이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데이터로 정리되는 사람일까.

 

나서고 싶니?”

 

 

라고 물었을 때 매번 아니요! 절대 아니요!! 라고 외쳤던 내 내면의 아이는 잠잠한 채로

나는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항상 묻는다. 어떤 걸 하고 싶을까

나는, 나는 아직도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일까.

나는 당장 내일 죽으면, 이 정리되지 않은 휴대폰 속 데이터들로 남겨지는 사람이 될까.

오늘도 근심 걱정을 거두지 못한 채로 이 끝나지 않은 고민을 계속하며 나의 장기자랑 신청서를 폐기한다.

 

김작가

회사원

A만 인정받는 세상 이야기 속에서 B안을 끊임없이 만들고자 하는 김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