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스트리드가 작가가 되기 전 겪은 굵직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그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손만 뻗으면 닿는 선택들이 아니라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선택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한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 시대에 이혼 소송 중인 편집장과 관계를 맺고 다른 나라까지 가서 아이를 낳고 미혼모가 된다.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갓 낳은 아기를 놔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 모든 선택의 최종 목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편집장과의 결혼을 거절한다. 결혼이 무산된 후 아이를 다시 찾으러 가지만 자신을 엄마로 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시 보호자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으로 향한다.
아스트리드와 나의 성향이 달라서 그런 건지 이 모든 선택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고는 생각했다. 어쨌든 선택하는 개인은 당시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을 선택할 테니 말이다. 나에게 최고의 선택은 아니지만 아스트리드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가 자신을 엄마로 여기지 않는다고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선택에 반감을 품는 내가 싫어져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게 나쁜 선택이었어?
아스트리드에게는 아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임시 보호자와 지내는 것이 생물학적 엄마인 자신과 지내는 것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면 아이를 데려왔을 것 같다. 그간 주지 못했던 사랑을 곱절로 채워 아이의 마음에 엄마로 자리 잡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인생은 길고 아이는 고작 서너 살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스트리드의 선택이 나쁜 선택이었을까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아스트리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의 나는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나 자신만 생각해도 되던 미혼 무자녀 시절에는 선택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편이었고, 세상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늘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우의 수를 따져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대부분의 선택을, 그 순간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인정할 수 있었다. 결정하는 그 순간만은 진심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게 나쁜 선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택이라는 단어에는 결과라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혼유자녀가 된 지금은 선택이라는 단어에 결과가 포함되고 만다. 여기서 결과란 나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남편과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선택이 어렵다. 아이들이 커가는 요즘, 나는 슬슬 내 인생 설계를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 아이들,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하지 않는 ‘나만의’ 인생 설계가 불가능함을 알고선, 어디에서 중간 점을 찾아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모 아니면 도’처럼 결정을 잘하던 내가 이러니까 나약해진 기분이다. 내가 잘하는 거라곤 그것뿐이었는데. 역시 소중한 것이 많아지면 그것은 동시에 약점이 되나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나쁜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고민할 일은 또 아니지 싶다. 좋은 중간 점을 찾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중요한 것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이 뚜렷해지면 선택도 쉬워지겠지. 경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있도록 도와줄 좌절, 실수, 실패, 응원, 격려, 작은 성취, 기쁨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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