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랑한 손이 부항과 혈침으로
벌집이 된 어깨를 토닥인다. “이러다 엄마가 죽을까 봐 걱정이야.”나는
꼬마를 꼭 안으며 스스로를 토닥인다. 내가 볼 수 없는 등짝을 가여워하는 마음이란. 내 심장에 제3의 눈이 생긴 것만 같다. 성악설 신봉자가 되었다가 끝끝내 성선설로 돌아서는 건 오로지 이 작은 온기 때문. 작은 심장이 어찌나 빨리 뛰는지 매일 들어도 빈틈없이 경이롭다. 덩달아
꼬마의 심박수 따라 삶을 향한 의지가 덩달아 콩콩 수혈된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과에 덜 데려갈 심산으로 양치까지. 너의 서툶을 핑계로 나의 독립을 미룬다. 샴푸는 10초 컷. 숨어있던 배냇머리를 문지를 때면 해초 속 보물을 찾는 기분이랄까. 토끼 앞니만 한 대문니는 암만 봐도 귀엽다. 엄마 힘내라고 만들어준 ‘문토끼 송’이 집안 공기를 덥힐 때면 바닥을 드러낸 인류애가 다시금 차오른다.
올빼미 유전자를 고스란히 흡수해 자정이 넘도록 재워달라 외치는 널 침대방에 밀어넣고선 혼자만의 카운트 다운에 돌입. 부리나케 양치질에 몰두하는 오른손과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때려 넣는 왼손. 대각선으로 침대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인간 도토리가 먼저 잠들기라도 한 날엔 서운함이 밀려온다. 오늘 자 달 토끼 상영분을 놓쳤군. 잠들기 전 내가 들려주던 달 토끼 설화를 이젠 아이가 각색하기 시작했다. "내 고향 보름달에 사는 동료 토끼가 말이야." 그럼 나는 "너 동료라는 말이 뭔지 알아?" 끝말잇기 같은 이야기로 밤을 수놓는 동안 노곤한 무의식의 바다로 동시에 풍덩.
그사이 울퉁불퉁 달 표면을 닮은 이케아 조명과 창문 사이로 달빛이 흘러 들어와 어둠을 밝힌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수습해 밀린 일을 마무리하거나 노트북과 함께 셧다운 되거나. 대게 홀로 보초를 선 조명을 끄며 "문콩(나물)이 오늘도 이만큼 컸어?" 다리 쭉쭉이로 시작하는 데칼코마니 같은 아침.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바짓단을 보며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다. 그렇게 '문토끼와 함께하는 오늘' 생방송 투데이 시작.
오후 다섯시 반. 띠띠띠띠. 도어락 키패드 소리가 본능의 주파수를 휘감는다. 자석처럼 붙어있던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문토끼 모자가 각자의 신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상영. 첫 번째 방문을 한달음에 통과한 다음 두 번째 중문을 열어젖힌
엄마의 대사가 이어진다. "내 아기!" 아들의
냉찰떡같은 볼을 조물조물하며 "문모찌 잘 다녀왔어?"
관전 포인트는 무사 귀환에 들뜬 두 모자가 불과 9시간 만의 상봉이라는 사실. 내일도 변함없는 그림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자 뒤로 보름달을
클로즈업하며 페이드 아웃. ‘둘만의 영화로운 일상은 지루함 속에 빛난다.’ 엔딩 자막이 흐른다.
youme
너와 나, 합해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