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슬픈 음식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장엄한 저음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깔렸다. 오디오북 속의 단테도 파를 써는 나도 지옥의 문을 지나고 있었다. 눈물 콧물 샘을 활짝 개방한 채 파와 사투를 벌이는 배경 음악이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이라니. 제법 잘 어울린다. …
걱정여사의 딸로 태어났지만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티베트의 격언이자 어느 일본인 심리상담가의 책 제목이고, 사직동에서 오랜 시간 짜이를 팔고 있는 그 가게 앞 입간판에 적힌 글귀이기도 하다. 어느 영화의 "루이즈가 그러는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선 그저 마음 편히 먹고 흘러가게 두…
상관 없는 거 아닌가?
한국의 축축한 공기에 젖은 담배 냄새가 나는 인천공항. 한국에 왔다. 2년 만이다.한국의 공기는 맑은 날에도 곧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뻤다가 슬퍼져버린 젊었던 날의 기억 같다고 할까.. 감성적인 것이 꼭 나이 탓인 것만 같다. 도착하고 며칠 후 우리는 제주에 머물렀다.첫째 …
가장 크게 웃은 날
"미술관 오픈런이라니." 자고로 미술관은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유유자적 떠다녀야 제맛이거늘. 설렘의 핏기를 뺀 심드렁한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모처럼 볕이 좋은 토요일, 오전 10시의 청량함을 머금은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숙박비를 아끼려 전날 심야버스를 택한 리스크는 컸다. 옆자…
눈부시게 빛나는 연휴를 보내며
긴 연휴가 지났다. 몇 년 전부터 수많은 직장인이 손꼽아 기다렸다는 2025년 추석 연휴였다. 개천절인 10월 3일 금요일을 시작으로 10월 10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열흘 가까이 내리 쉬는 꿈의 연휴에, 나 역시 유급 휴일을 조금은 즐기는 반쪽짜리 직장인일 줄은 미처 몰랐다. 모처럼 …
사랑이 전부다
10개월 만에 한국이다. 모국이 여행지가 되니 기분이 색다르다. 그리스와 한국은 직항이 없고 아이와 단둘이 14시간 장거리 비행이지만 마음이 설렜다. 가족에게 줄 선물을 한가득 캐리어에 싣고서. 10월의 어느 가을날, 남동생 결혼식에는 마법처럼 비가 그쳤다. 자연 속 맑은 공기와 바람은…
춤이 나를 구원하지 못했을 때
20대 때 나는 친구, 음악, 춤이 좋아서 클럽을 드나들던 죽순이었다. 음악과 춤을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TV에 나오는 댄서들을 침 흘리며 바라보다 엄마가 되었다. 욕망이 있는 줄도 몰랐다가 그것이 환상이 되어 가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깊숙이 자리한 욕망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