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일까 무덤일까. 책더미를 물끄러미 올려보고 있으면, 고약한 스크루지 양반이 된 것 같다. 들이는 속도보다 내보내는 속도가 더디니 속수무책으로 쌓여간다. 보이지 않는 욕심이 외피를 입고 태어나면 이런 모습일까. 언젠가 내가 짓거나 고쳐 쓸 수 있는 공간의 쓸모를 고민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돌아본다.
숨이 턱턱 막힐 때마다 숨어들던 공간은 서점이었다. 빼곡하나 가지런한, 북적이나 고요한. 이질적인 수식어가 둘러싼 책의 숲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만약 내가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면 몇 층짜리 건물이 좋을까. 행복한 상상에 빠져든다. 규모가 어떻든 1층은 무조건 서점 꼭대기는 집으로 정하니 나머지는 술술 풀린다. 2층은 원두를 직접 볶는 카페이자 벽장을 스르르 열면 변신하는 스피크이지 바. 3층은 심야식당처럼 '늘 먹던 걸로'를 외칠 수 있는 밥집. 4층은 공유 오피스에서 퇴근 후엔 글 쓰는 이들의 아지트. 5층은 에어비앤비. 이렇게 쌓다 보면 몇 층까지 올릴 수 있을지 기대의 심박수가 쿵쿵 고조된다.
지역에 적을 두고 서울 생활 인구로 살다 보니 '경계인'이라는 정체성이 또렷해졌다. 백팩에 들어갈 정도로 최소한만. 물건을 고르는 기준도 삶을 대하는 기준도 더 가볍게를 외치게 된다. 소유 공유로 관점의 추를 이동하니 살아가는 방식도 풍요로워진다. 따끈따끈한 신작을 1층에서 픽업해 2층 카페에서 갓 뽑은 원두커피를 나란히 두고 크레마의 여운을 누린다. 처음 만난 옆 사람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제철 재료로 만든 밥상을 3층에서 즐기다 배를 두드리며 4층으로 향한다. 집중력을 끌어 모아 일을 마친 오후 5시 무렵, 전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이 머물 5층 숙소의 체크인을 돕는 일상.
한때는 커다란 저택에서 모두가 내 것인 혼자만의 공간을 꿈꿨다. 그것도 충분히 좋겠지만 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종일 쓸고 닦다 보면 주객이 전도될 거란 합리적인 의심이 피어난다. 그렇다면 각자의 아틀리에에서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며 일상의 균형을 찾아가는 삶은 어떨까. 그렇게 확보된 시간으로 더 많은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면, 집을 바라보는 관점도 공간에 대한 정의도 노량진 수산시장의 활어 시가처럼 매일 변동하지 않을까.
욕심을 부린다면 슬쩍 내 흔적을 흘리는 정도로만. 한 켠에 새것 같은 중고책 판매대 사인을 만들어 내 서가의 새 주인을 찾아주는 1층 서점, 여행 중에 내가 발품 팔아 모은 찻잔을 이용할 수 있는 2층 카페, 내 취향과 철학이 깃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3층 식당. 매번,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층층이 피어난다면, 언젠가 지구에서 보내는 이번 생의 유효기간이 다하더라도 나는 공기처럼 여기저기를 떠도는 불멸의 이야기가 되어 공간 곳곳에 배어 있지 않을까.

youme
너와 나, 합해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