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이것 좀 봐.”
아이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짧은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하던 일에서 고개만 슬쩍 돌렸다. 아이가 키득키득하는 걸 보니 재미있는 모양인데, 나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몰랐다. 아이는 그런 내 반응이 답답한지 처음부터 다시 보여줬다. 이번에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제야 나도 웃음이 났다. 아이는 영상보다 뒤늦게 웃는 내가 더 웃긴 모양이었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아이 옆에 앉았다. 하나만 보려던 것이 두 개가 되고, 어느새 다른 녀석까지 다가와 어깨를 붙였다.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인 우리 집 남매와 나는 작은 화면을 가운데 두고 비좁게 모여 앉았다. 영상 속 장면을 따라 하다가 웃고, 서로의 표정이 우스워 또 웃었다. 한바탕 웃다가 두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들도 별일 아니라는 듯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들과 쇼츠를 봤다고 하면 어쩐지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오래 본 건 아니라고, 그냥 보기만 한 건 아니라고. 나부터도 둘 중 하나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봤는지부터 확인하는 엄마다. 조금만 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나란히 앉아 웃고 있었으니, 내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무엇을 얼마나 봤는지보다 아이가 나를 불렀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혼자 보고 웃어도 되는 것을 굳이 내게 가져왔다. 자기가 재미있어하는 것을 엄마도 재미있어했으면 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함께 웃는 일에도 자꾸 순서가 밀린다. 밥은 먹었는지, 씻었는지, 숙제는 끝냈는지 묻고 나면 또 다음에 챙길 것이 보인다. 둘 중 누가 다가와도 반가운 마음보다 물어볼 말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생각하면서도 정작 얼굴을 마주하고 즐겁게 보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날이 많다. 말을 많이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내가 확인하고 아이들은 대답한 것뿐인 날도 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늘 많았지만, 아이들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은 얼마나 들었을까. 재미있어서 보여준 영상 하나를 두고도 나는 얼마든지 시간 관리와 휴대전화 사용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는 그저 함께 웃고 싶어 나를 불렀는데, 나는 얼마나 봤느냐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거듭되면 아이들도 나를 부르기 전에 망설이게 될까.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가도, 또 한 소리 듣겠다 싶어 혼자 웃고 말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날 아이 곁에 앉기를 잘했다 싶었다. 내가 뒤늦게 웃음을 터뜨렸을 때 아이가 나를 보며 더 크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두 아이에게 괜찮은 어른이고 싶다. 그런데 그 마음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늘 좋은 판단을 내리고, 적절한 말을 해주고, 본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느라 아이가 보여주는 것을 보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부터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나도 잘 몰라서 아이의 설명을 들었고, 뒤늦게 알아듣고 함께 웃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좋은지 자꾸 다음 영상을 보여줬다.
무슨 영상을 봤는지는 벌써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두 아이의 어깨가 들썩이던 모습과 웃다가 내게 기대오던 몸은 기억난다. 아이들에게도 그날이 비슷하게 남으면 좋겠다. 엄마와 무엇을 봤는지보다, 엄마도 참 재미있어했다는 기억으로.
다음에도 “엄마, 이것 좀 봐” 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또 잠깐 망설일 거다. 하던 일도 있고, 마저 보내야 할 답장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그날의 웃음을 떠올리며 조금은 더 자주 고개를 들고 싶다. 아이들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직 이렇게 많을 때, 옆으로 조금 당겨 앉아 함께 보고 싶다.

youme
너와 나, 합해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