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무렵의 일이다. 지인으로부터 본인이 운영하는 빈티지샵에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주말에 샵에서 작은 행사가 열리는데, 가족들과 함께 오면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무슨 자리인지도 모른 채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한 그곳은 알고 보니 ‘포포포 에디터 모임’이었다.
에디터들은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육아를 비롯한 각자의 삶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뒤편에서 잡지와 책을 구경하며 그 풍경을 지켜봤다. 행사가 끝날 무렵 나도 얼떨결에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내년에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다는 내 말에, 마침 육아휴직 이야기를 연재 중이던 한 에디터님이 이런 말을 건넸다.
“육아휴직은 휴직의 끝을 준비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시작도 전에 끝을 준비하라니, 그때는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어느덧 육아휴직이 끝난 지금, 새롭게 휴직을 앞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건네게 될까 생각해 본다.
버킷리스트라는 안전지대
휴직을 앞두고 아이 둘의 일상을 챙기는 시간 외에 남는 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며 여러 가지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와인 자격증 따기, 아들과 둘만의 여행 떠나기, 해외 한 달 살기, 투자 공부하기 같은 것들이었다.
초반은 순조로웠다. 일정을 짜고 떠나면 되는 여행이나 한 달 살기, 시험 범위가 명확히 정해진 자격증 공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면 정해진 결과가 나오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계획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갈 때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문제는 후반부였다. 복직이라는 끝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마음이 달라졌다. ‘책 많이 읽기’나 ‘투자 공부하기’ 같은 목표를 세우긴 했지만 초반 같은 몰입이나 동기부여는 생기지 않았다.
경험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아이들을 보내고 난 후의 시간은 믿기지 않을 만큼 빨리 흐른다. 육아휴직 기간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을 조금 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오후는 더 빠르다. 이제 무언가 해볼까 하면 머릿속에서 하원 시간 카운트다운이 작동한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으로 출근도 해보고, ChatGPT에게 생산성을 높이는 일일 루틴을 짜달라고도 해봤다. 하지만 무언가 계속하고는 있는데도 길을 헤매는 기분이었고, 남은 시간이 줄어든다는 조급함만 커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시간과 축적이 필요한 일들
양조용 포도나무는 심자마자 바로 와인을 만들 만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어린 묘목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응축된 열매를 맺기까지는 최소 몇 년에서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겉보기엔 그저 시간만 흐르는 것 같아도, 나무는 그 기간 동안 땅의 성분을 빨아들이고 기후의 변화를 견디며 고유한 잠재력을 축적한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자격증 시험처럼 단기간에 공부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다. 좋은 투자자가 되는 일도, 좋은 양육자나 배우자가 되는 일도 그렇다. 지식이나 기술이 한 방향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경험과 시행착오가 겹겹이 축적되어야만 비로소 눈이 트이는 영역이다.
아들과 해외 한 달 살기를 떠나기 전, 아내에게 미리 해둔 말이 있다.
“일부러 공부는 많이 안 시키고 운동이랑 활동이 많은 캠프를 골랐어. 영어 실력이 늘어서 올 거라고는 너무 기대하지 말아 줘.”
처음 타보는 해외 항공편과 국경 심사, 낯선 숙소에 적응하기, 함께 장을 보며 한 달 치 살림을 꾸려보는 일, 우리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험. 나는 아들에게 눈에 보이는 어학 성적 대신,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마찰을 겪으며 얻는 무형의 경험들이 남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왜 그렇게 관대하지 못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방향성보다, 남는 시간을 알뜰하게 써서 빨리 ‘레벨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관성을 거스르는 작은 실험실
휴직이 끝나가는 시점에 찾아온 방황은, 어쩌면 단기 목표들이 모두 소진된 자리에 찾아온 당연한 여백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휴직 기간 동안 내게 진짜로 남은 것은 종이 자격증이나 완독한 책의 권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은 예상치 못한 것들이 더 소중했다. 테이스팅 시험을 준비한다며 직접 사람들을 모집해 블라인드 테이스팅 모임을 기획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 아들과 부대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소한 습관과 성향들이 그랬다.
나는 그 관찰의 결과물들을 모아 ‘아들 101’이라는 노트를 남겼다. 이를테면 ‘아들은 아무 바닥에나 걸터앉고 바닥 위생에는 한없이 둔감하지만, 물컵에 관해서는 위생에 매우 민감함’ 같은 기록들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것들은 애초에 버킷리스트에 없던 성과들이었다. 계획한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얻은 수확이었다.
유일하게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평소 내가 하던 생각이나 익숙한 방식을 강화하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조금 더 다양한 씨앗을 뿌려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와인 공부도, 투자 공부도 결국 내가 이미 좋아하고 익숙한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드는 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놓친 것은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자라날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반드시 내가 이미 잘 알고, 잘하는 일일 필요도 없었다.
일부 와이너리에서는 당장 와인을 생산하는 주력 포도밭 외에도 미래를 위한 시험 재배지를 따로 운영한다. 기후 변화에 대비해 낯선 품종을 심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재배 방식을 실험하기도 한다. 이 작은 포도밭의 가치는 당장의 수확량이 아니라 10년, 20년 뒤의 가능성에 있다.
예전에 방문했던 와이너리의 시험 재배지. 어린 포도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다. @피에몬테, 이탈리아
우리의 휴직도 이런 작은 실험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휴직이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하는 시간은 아니다. 돌봄과 휴식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다. 다만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여백이 주어진다면, 그 일부만큼은 평소의 관성에서 벗어난 시도에 내어줘도 좋겠다.
실험실은 무작정 열심히 달리는 곳이 아니다. 실패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평소 해보지 않았던 엉뚱한 시도를 해보는 곳이다.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호기심이 가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어 보는 곳이다.
복직하면 익숙한 일상은 다시 속도를 낼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잠시 걸음을 늦추거나,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낯선 길로 들어서 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짧은 우회가 이후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작년 여름 빈티지샵에서 만난 에디터님이 어떤 뜻으로 ‘휴직의 끝을 준비한다’고 하셨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제 내게 그 말은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리듬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새로운 생각과 욕구의 씨앗을 심어두는 시간으로 삼아보자는 것.
이제 막 휴직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휴직이 끝날 때 모든 것을 수확해 돌아올 필요는 없다고. 미래의 나를 믿고, 빈 땅 한쪽에 낯선 품종의 묘목 하나를 심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다시 바쁜 일상에 휩쓸리더라도 그 묘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뿌리를 내릴 테니까.
네비올로
와인을 사랑하고, 일상의 깊이에 호기심 가득한 이과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