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과 편안함 사이

2026. 10. 27by오자히르

한국과 그리스에서 보낸 3개월의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익숙한 풍경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180도 다른 두 세계를 오가며 혼란스럽기도 했다. 방학이면 더 바빠지는 엄마의 하루는 여유를 누릴 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갔지만, 선명히 기억에 남는 감각이 있다. 한국의 편리함과 그리스의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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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삶은 편리하다. 인터넷은 빠르고, 늦은 밤에도 필요한 것을 주문하면 새벽에 받을 수 있다. 행정 업무도 간편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하고 클릭하고 결제하면 된다. 24시간 편의점과 카페와 식당, 상점도 얼마나 다양한지 선택지가 많고 풍요롭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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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빠르게 걷고, 서둘러 움직이고, 다음 일을 준비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아끼는 것이 삶을 잘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잠깐의 여유가 생겨도 그 시간을 무언가로 채운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일을 하고, 이동하면서도 메시지를 확인하고, 쉬는 동안에도 내일 일정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나를 편리하게 해 주는데 정작 내 마음은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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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리스로 돌아오던 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눈부신 태양,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나를 맞아주었다. 아테네는 휴가를 간 사람들로 한산했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스와 한국의 국토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 밀도는 그리스가 한국의 5분의 1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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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배를 타고 그리스 섬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낙소스와 파로스, 안티파로스 섬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문득 깨달았다. 그리스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자유롭게 춤을 추고, 대화를 오래 나누며, 자연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여유롭게 즐긴다. 눈앞의 삶을 온전히 누린다. 인생은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만큼. 신도 질투할 만큼 인생을 즐겁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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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삶의 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얼마나 많이 느끼고 감동하며 살았는가’라면 그리스인은 단연 일등이 아닐까. 그리스에서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해야 할 것, 사야 할 것이 참 많았는데 그리스에 와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충분했고, 따뜻한 햇살 아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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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에도 가치가 있고, 편안함에도 대가가 있다. 하지만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지면 안 되는 듯하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효율적으로. 그렇게 삶에서 불편한 것들을 하나씩 없애다 보면, 삶의 여백까지 함께 사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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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대신 기다림의 설렘을 잃고, 직접 찾아갈 필요가 없어진 대신 우연히 발견하는 즐거움을 잃는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대신 그곳까지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수많은 장면을 놓친다. 편리함은 삶을 가볍게 만들어주지만, 삶을 진짜로 느끼는 시간을 줄여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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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다고 반드시 편안한 삶은 아니듯, 불편하다고 꼭 불행한 삶도 아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하고, 직접 걸어야 하고, 원하는 것을 바로 얻지 못하는 시간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우게 한다. 햇살과 바람만으로도 풍요를 느끼고, 느리고 불편한 삶에서도 얼마든지 충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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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비효율적이어도 괜찮은 삶. 어쩌면 신이 아닌 우리에게는 그런 인간다운 삶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편리함과 편안함 사이, 내가 원하는 삶의 속도를 여전히 배우고 있다.

 

 



 

오 자히르

sarahbae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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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히르

번역가

단순한 삶 속에서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