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포 와인이야기 : 기후위기와 와인

2026. 08. 19by네비올로

얼마 전 아들과 함께 이정모 관장님의 강연에 다녀왔다. 주제는 '멸종의 역사로 보는 기후위기'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강연이었는데, 관장님은 기후위기에 대해 인류가 지구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지구는 아무렇지 않고, 어떤 멸종은 다른 생명에게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문제는 우리의 생존이라고 했다. 죄책감 대신 사실을 먼저 짚어주는 강연이었다.

"한국은 지금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죠?"

7월 중순, 유럽은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들끓고 있었지만 한국은 평년 수준의 여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뒤이어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던져졌다.

"독일 사람들은 이례적인 무더위를 피해 더 더운 남부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단순했다. 독일의 일반 가정에는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냉방 인프라가 갖춰진 남부 유럽으로 피난을 간다는 것이다. 기온이 조금이라도 낮은 곳이 여름을 나기 좋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내게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위기는 높아진 기온 그 자체보다, 변화에 대응할 '수단'이 없을 때 찾아온다.

에어컨을 찾아 남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포도나무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사람은 더위를 피해 짐을 싸서 떠날 수 있지만,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에어컨은커녕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유럽의 포도나무들은 대체 어떤 여름을 견디고 있을까.

기후위기는 이미 와인 생태계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폭염과 가뭄은 포도의 성숙 리듬을 흐트러뜨리고, 보르도에서는 인근 산불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초가을 무렵이던 수확 시기는 한여름으로 앞당겨지는 추세다.

가장 큰 문제는 수백 년간 지켜온 와인의 품질과 스타일을 예전처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온 상승은 포도의 당과 산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와인의 뼈대까지 흔들고 있다. 

 

 

와인의 뼈대, 산도

무더위에 아이들과 길을 걷다 보면 편의점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음료 진열대에는 저마다 청량함을 약속하는 형형색색의 제품들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원재료명을 살펴보면 꽤 많은 음료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구연산, 사과산 같은 산이다.

만약 이 음료들에서 산이 빠지고 당분만 남는다면 어떨까. 첫 모금은 달콤하겠지만 금세 물리고, 입안에는 단맛만 무겁게 남을 것이다. 산은 자칫 둔해질 수 있는 단맛을 정돈하고 음료에 선명한 윤곽을 더한다.

와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산도는 과실의 풍미와 알코올, 당분, 탄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와인의 구조를 만든다. 아무리 풍부한 과실 향을 지닌 와인이라도 산이 받쳐주지 못하면 쉽게 무겁고 평평한 인상을 준다. 와인의 장기적인 안정성과도 깊이 연결되는 요소다.

우리가 신맛에 끌리는 이유의 실마리는 아마 과일에 있을 것이다. 과일이 익어가는 동안 당은 증가하고 유기산의 조성은 변화한다. 그 결과 덜 익은 과일의 날카로운 맛은 줄고, 익은 과일 특유의 풍미가 만들어진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은 그 미묘한 조합으로 과일의 상태를 읽어냈을 것이다. 매력적인 것은 단맛도 신맛도 아닌, 그 둘의 관계였던 셈이다.

 

 

"우리는 이제 서늘한 빈티지를 기다립니다"

와인21에 실린 칠레 알마비바 취재 기사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읽었다. 총괄 와인메이커 미셸 푸리에의 말이다.

유럽에 비해 좋은 일조량과 온화한 기후를 가진 칠레는 매년 안정적인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한때 좋은 빈티지란 충분한 햇빛과 높은 기온을 뜻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늘한 빈티지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그들의 해법은 포도밭을 서늘한 고지대로 옮기거나 첨가물로 부족한 산도를 채우는 1차원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핵심은 기후를 읽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데 있었다. 평균 기온이나 총 강수량 같은 단편적인 숫자에 더는 얽매이지 않는다. 대신 열이 언제, 어떤 속도로 축적되는지, 겨울 강우가 얼마나 회복됐는지를 본다. 나아가 포도밭을 잘게 쪼개어 미세한 기후 차이에 맞춰 개별 수확을 진행하고, 토양 생태계 복원을 위해 화학 제초제도 끊었다. 매년 요동치는 조건에 맞춰 블렌딩 비율도 유연하게 조율한다.

닥쳐온 위기를 힘으로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자연의 흐름에 맞춰 찾아낸 적응의 과정이다.



 

적응이라는 말의 오해

“살아남은 것은 강한 생물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한 생물이다”

익숙한 문장이지만 오랫동안 이 말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적응이란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 새로운 환경으로 먼저 옮겨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에어컨이 있는 남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포도나무는 떠날 수 없다. 그리고 알마비바 역시 떠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밭을 옮기는 대신 그들이 택한 것은 기후와 토양에 대한 좀 더 세밀한 관심이었다. 하나였던 밭을 여러 구획으로 쪼개 각각 다른 날에 수확했다. 밭이 넓어진 게 아니라, 같은 밭을 더 세밀하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대응할 수 있는 지점이 늘어났다. 위기가 '견딜 것인가 떠날 것인가'의 두 갈래로만 보였던 이유는, 어쩌면 그동안 세상을 너무 낮은 해상도로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바꾸지 않을 것인가

그들의 대응에서 흥미롭게 읽은 것은, 변화의 중심에 오히려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수확 시기도 블렌딩 비율도 재배 방식도 달라졌지만, 결국 그 모든 조정은 알마비바가 지켜온 균형과 구조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산도가 그렇다. 산은 눈에 띄는 요소가 아니다. 화려한 과실 향처럼 첫인상을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이 무너지면 와인은 평평해지고,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변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무엇을 바꿀지부터 묻는다. 그런데 알마비바의 순서는 반대였던 것 같다. 무엇을 지킬지 먼저 정해두었기 때문에 나머지를 그토록 과감하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적도 부근에서 한 달을 보내고 있다. 일 년 내내 기온이 같아 일기예보를 볼 일이 거의 없는 곳이다. 같은 시기 한국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지나고 있어서, 더위를 피해 적도로 왔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듣는다. 

아내와 가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걱정한다. 다만 그 걱정의 실체는 더워진 지구라기보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환경에 대한 막연함에 가까울 것이다. 정작 나와 아들은 벌써 이곳의 날씨와 음식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들이 맞이할 미래도 그들에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한 현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나가고, 유럽의 포도나무들은 올해도 그 자리에서 여름을 났다. 나무는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네비올로

와인을 사랑하고, 일상의 깊이에 호기심 가득한 이과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