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전쟁

2026. 06. 08by네비올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을 감내하고 씩씩하게 지내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내와 맞벌이를 하느라 둘째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다행히 처음부터 별 탈 없이 잘 적응해 왔는데,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의 등하원을 전담하게 되면서부터 아이가 조금씩 떼를 쓰는 날이 늘었다.

시작은 사소했다. 현관문을 나섰는데 아침에 비타민 젤리를 받지 못했다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고집을 부리는 식이었다.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주면 안 될 것 같아, 동네를 몇 바퀴씩 돌며 달래고 어른 끝에 겨우 등원을 시켰다.

 

문제는 며칠 뒤였다. 하필 첫째 아이의 학교 참관수업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마음이 급했다. 빨리 둘째를 등원시켜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먹을 걸로 달래보고, "아빠랑 오빠만 갈 테니 너 혼자 집에 있어"라며 엄포도 놓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30분.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첫째를 키울 때는 육아가 참 수월하다고 생각했었다. 조금만 타이르면 금방 수긍했고, 등하원길에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하지만 둘째는 결이 전혀 달랐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울부짖으며 기어코 얻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나와 아내 모두 나름의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 아이의 고집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지만, 둘째를 설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내도 못 가는데 나까지 늦어버리면 첫째가 얼마나 서운해할까.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둘째의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고, 나와 아이 사이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손에 쥔 긴장의 줄을 탁 놓아버렸다.

 

‘그래, 아직 20분은 남았으니 다 잊고 차분해지자. 못 가면 어쩔 수 없지.’

 

어린이집에 보내려던 모든 시도와 재촉을 멈췄다. 그리고 울고 있는 둘째를 조용히 안아 안방 침대로 향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쿠션에 기대앉아 슬며시 장난을 걸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더니, 나를 보며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빨리 긴장이 풀렸다. 몇 분이 흘렀을까, 둘째가 먼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아빠, 어린이집 도착하면 나래반까지 데려다줄 거야?”

 

“응, 당연하지.”

 

아이의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혀 다시 집을 나섰다. 가슴을 졸이며 손을 잡고 걸었지만,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씩씩하게 걸어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헤어질 때 눈가에 살짝 물기가 고이긴 했지만, 이내 친구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육아를 하며 이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많았다. 그런데도 이 평범한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매번 줄을 당기기만 하던 내가 문득 '내어줄때'의 그 감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은 삶의 도처에 늘 있었다. 다만 내가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을 뿐이다. 아내와의 크고 작은 다툼이 해결되는 순간도 내가 논리적으로 더 강하게 내 쪽으로 줄을 잡아당길 때가 아니라, 그저 한 걸음 물러서서 줄을 헐겁게 두었을 때였다. 운동이나 게임을 할 때도, 심지어 투자를 할 때도 내 쪽으로 줄을 당기기만 하는 대신 느슨하게 긴장을 놓을 때 비로소 원하는 방향으로의 전진이 시작되곤 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리가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아도 저마다 흘러갈 방향을 알고 있다. 

 

아이는 부모가 밀어붙이지 않아도 결국 자신이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아내와 나 역시 화해를 원한다는 것을 서로 안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자산시장 역시 수많은 변동성을 겪으면서도 결국은 우상향의 궤적을 그려왔다.

다만 그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은 너무나 섬세하고, 세상의 변수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공간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에게 진짜 필요했던 건, 상대방을 믿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작은 여백이 아니었을까.

이 일 이후, 아이는 등원할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주문을 내게 건넨다.

 

 

“아빠, 오늘도 어린이집 도착하면 나래반까지 데려다줄 거지?”

 

 

 

네비올로

와인을 사랑하고, 일상의 깊이에 호기심 가득한 이과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