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에게해를 바라보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었다. 따사로운 봄날, 그리스 섬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며 여행지를 고르는 것만큼 천국에 데려다 놓는 기쁨은 없었다. 크레타를 선택한 건 조르바 때문이었다. 삶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직접 부딪히고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 오래전 책 속에서 만났던 그 인물을 에게해의 바람 속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매우 소박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아홉 차례나 올랐지만 알베르 카뮈와 한 표 차이로 끝내 수상하지 못했다. 그의 박물관 역시 ‘미르티아’라는 작은 산동네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동양인이 드문 그리스인데 이 작은 공간에서 한국인을 두 명이나 만났다. 한국인이 유독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자유’를 깊이 갈망하기 때문 아닐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자유. 사회가 정해놓은 역할과 기대, 타인의 시선을 모두 벗어던지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마흔이 넘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인 듯하다. 인생을 20년씩 사계절로 나눈다면, 봄과 여름에는 알 수가 없다. 가을과 겨울이 되어야만 보이는 게 있다.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나는 이제 초가을 문턱에 서 있다. 칼 융도 말했다. 인생의 전반부는 누군가가 되려 하지만, 후반부에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리스에서 살면서 자주 느낀다.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햇살 좋은 아침에 산책을 하고, 바람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행복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리고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는 행복이 아니라 ‘자유’라고.
언제나 여유롭고 너그러운 그리스인을 볼 때마다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늘 열심히 해야 했고, 잘해야 했고, 완벽해야 했다. 그냥 살아내기만 해도 대단한 거였는데. 요즘엔 그저 세상을 경험하는 데 스스로 시간을 내어준다. 여행을 자주 다니고, 바다를 오래 음미하고, 낯선 골목을 천천히 걷는다.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느껴보고, 충분히 지금을 살아간다.
순수한 사람이 좋다. 저울질하지 않고, 모두 품어주는 사람. 삶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니까. 종이 3톤은 읽었을 듯한 지식인 주인공이 조르바 앞에서 아무 말 못 했듯이. 마지막 장에서는 한참을 울었다. 조르바의 죽음은 나와 가족, 친구들의 마지막을 보는 것만 같아서. 언젠가 누구에게나 다가올 순간이라서.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오직 지금의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면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에게해의 바람처럼 마음에 오래 남는 그의 묘비명이다. 자유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용기였다.

오 자히르
sarahbaek5@gmail.com

오자히르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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