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포 와인이야기 : 와인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

2026. 05. 12by네비올로

전 세계 와인 관련 출판물 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책은 단연 일본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일 것이다. 1,500만 부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고, 연재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원작자인 아기 타다시 남매가 소문난 와인 마니아인 만큼 작품 속에는 방대한 종류의 와인이 등장하며, 와인에 갓 입문한 사람부터 숙련된 매니아까지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이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와인의 맛과 향을 대단히 시각적이고 공감각적인 비유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샤토 몽페라'를 마시고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고 표현한 장면이 그렇다.

 

 

물론 만화적 허용이 섞인 다소 과장된 묘사다. 필자 역시 샤토 몽페라를 마셔보았지만, 귓가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들려오지는 않았다. 이는 철저히 주관적이고 예술적인 표현 방식에 가깝다.

실제 와인 업계나 매니아들이 와인을 배우고 테이스팅하는 방식은 이처럼 한 편의 시를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WSET(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의 체계적인 테이스팅 접근법 (SAT) 처럼, 어느 정도 전 세계가 공통으로 '합의한' 객관적인 기준과 언어를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소믈리에 자격을 얻기 위해, 혹은 남들 앞에서 그럴듯하게 와인을 묘사하기 위해 이런 기법을 배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와인의 '합의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나 과시, 그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와인에 대한 감각의 해상도, 즉 인지의 '화소(Pixel)'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휘력, 세상을 보는 카메라의 화소

최근 어느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정연주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보며 깊이 공감한 대목이 있다. "어휘력이 달리는 분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좁고 흑백논리에 갇히기 쉽다"는 일침이었다.

우리의 뇌가 쉽게 흑백논리에 빠지는 이유는 오랜 '생존 본능' 때문이다. 과거 야생의 시대에는 수풀 너머의 그림자가 맹수인지 사냥감인지 단숨에 이분법으로 판단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복잡하게 분석하는 대신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아끼고 세상을 단순화하여 인지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렇기에 내 안에 상황을 묘사할 적절한 어휘가 부족하면, 뇌는 즉각 이 원초적인 생존 모드로 돌아가 눈앞의 세계를 ‘좋다’와 ‘싫다’, ‘내 편’과 ‘네 편’이라는 거친 픽셀로 퉁쳐버리고 만다.

결국 어휘력이란 내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세상을 정교하게 인식하는 ‘입력 렌즈’이기도 하다. 뭉뚱그려진 감정과 현상에 정확한 단어라는 이름표를 쥐여줄 때, 뇌는 비로소 그것을 흑백의 배경에서 선명하게 분리해 낸다. 내가 가진 어휘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해상력(화소)’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언어의 화소가 촘촘해질수록 우리는 타인의 미세한 감정을 읽어내는 포용력을 갖추게 되고, 일상을 훨씬 다채롭게 감각할 수 있다.

 



와인의 언어 배우기 : 인지적인 귀 기울임

과거 음악을 전공하는 지인 덕분에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토요 콘서트’라는 클래식 공연을 종종 보러간 적이 있다. 클래식에 문외한 이지만 작품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진행하는 공연은 초보자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가 주제인 공연에서, 지휘자가 잉글리시 호른과 클라리넷 등의 특징적인 악기의 파트를 각각 들려주며 해설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완곡을 연주했는데 앞에서 배운 악기들의 선율이 들리면서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클래식에 취미가 없는 내가 이 글을 쓰면서 10년도 넘은 과거의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정말 유익했던 공연임에 분명하다!)  

이런 경험은 꼭 클래식 공연장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지금 당장 Red Hot Chili Peppers의 ‘Higher Ground’를 틀어보자. 포포포 에디터 Kev.D.Ed 님이 “지금 낮게 깔리는 베이스 기타의 타격감을 계속 따라가 보세요!” 라고 말한다. 여러분의 귀 기울임으로 인해 방금 전까지 보컬의 목소리에 가려져 있던 이 음악의 전혀 다른 단면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와인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도 이와 닮아 있다. 처음 와인에 입문했을 때,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은 그저 '포도주 냄새' 혹은 '술 냄새'라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다. 마치 해상도가 낮은 흐릿한 사진처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체계적인 테이스팅 언어를 익히고 감각의 지향점을 배우다 보면 신기한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누군가 "숲바닥의 흙내음 올라오지 않나요?"라고 짚어주는 순간, 내 코끝에서도 비로소 그 향들이 선명하게 나뉘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감각에 '인지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훈련의 결과다.

결국 와인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공부(Studying)'가 아니라, 내 뇌에 새로운 분류 체계를 만들고 감각의 해상도를 높이는 '배움(Learning)'의 과정이다. 아는 만큼 들리는 베이스 선율처럼, 와인 역시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만큼 잔 속의 풍경이 선명해진다. 뭉뚱그려져 있던 감각들이 언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붉은 과실, 가죽, 향신료와 같은 다채로운 레이어로 분화되는 경험. 와인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거친 8비트 픽셀로 뭉쳐 있던 감각을 정교한 고해상도 데이터로 복원해 내는 일이다.

 

 

언어라는 사다리를 넘어, ‘유일무이함’이라는 세계로

우리는 세상을 더 깊이 포용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다. 잉글리시 호른의 음색을 기억하고, 와인의 아로마 휠을 외우며, 아이의 서툰 몸짓에 의미를 붙이고 해석하는 과정은 분명 내 삶의 해상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었다.

하지만 그 지식이 충분히 체화된 이후에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진짜 목적지는, 다시 언어로 쉽게 규정될 수 없는 각자의 ‘유일무이함’을 온전히 감각하는 일이다. 체계적인 테이스팅 노트상으로는 완벽히 동일한 두 와인일지라도, 어떤 와인은 그저 ‘평론가 점수가 높은 비싼 술'에 머물고 어떤 와인은 ‘내 인생 와인’이 되기도 한다. 그 한 끗의 차이, 즉 언어를 넘어서는 ‘무엇’을 포착해 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지식의 소비자를 넘어 삶의 감상자가 된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신의 물방울』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분명 그 만화의 묘사들은 과잉되어 있고, 때로는 실질적인 테이스팅에 방해가 될 만큼 부풀려져 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굳이 그 복잡하고 화려한 은유를 동원했던 이유는, 객관적인 언어의 그물로는 도저히 건져 올릴 수 없는 그 와인의 느낌을 잡아두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시나 문학도 결국 단편적인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특이성을 여백이 있는 글로 담아내려는 노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휘의 양을 늘려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 

그것은 결국 언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언어가 필요 없는 더 넓고 깊은 ‘신세계로’ 뛰어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배운 수많은 단어들이 결국 나를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세상을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데려다주기를 바랄 뿐이다.

 



네비올로

와인을 사랑하고, 일상의 깊이에 호기심 가득한 이과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