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2일 수요일
전쟁은 나에겐 그저 먼 이야기였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세계대전 등 전쟁은 역사책 속에 존재하는 사건, 또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내전이나 우크라이나전쟁 등은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 그저 뉴스 속의 사건일 뿐이었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유공자로 현충원에 모셔져 있지만 나는 그저 그뿐 어떤 의미도 주지 않는다 생각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을 읽고 난 후 내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는 25년 전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 2부에는 25년 후 화자의 며칠이 담겨 있다. 2부의 화자는 우연히 자신의 생일과 25년 전 누군가가 사망한 날짜가 같다는 걸 알게 되고, 25년 전 사망한 누군가를 알고 싶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25년 전 죽은 그녀는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중요하지 않은, 그저 어떤 사건의 희생자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관련이 있어보이는 자료들은 많지 않고 그나마도 그것들을 통해서도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없다. 그녀의 흔적을 직접 찾아나서지만 현실은 장애물 투성이다. 기록된 역사, 역사관에 보관되어 있는 역사, 남성의 입으로 발화된 역사에서는 찾을 수 없음을 깨닫고 헤매던 중 한 노파를 만난다. 25년 전을 살아냈을, 어쩌면 그 사건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파를 만나지만, 노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지 못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다.
2부의 화자는, 25년 전 사망한 한 여성의 흔적을 찾는 그는, 역사에 관심이 있던 이가 아니다. 그는 이웃한 건물이 폭격을 당해도 군대가 그 건물을 왜 폭격했는지, 청년들은 왜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알려는 마음조차 없다. 그저 그 폭격으로 인해 자신의 출근길이 힘들어지고, 자신의 책상에 먼지가 날아오는 것이 짜증날 뿐이다. 그랬던 그가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을 알면서도 25년 전의 그녀를 찾아 헤맨다.
왜일까. 어쩌면 우리는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린건 아닐까. 역사가 사소하게 여긴 사건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그 사소함을 찾아내 사소하지 않음으로 발화되게 할 수 있다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온 역사의 발화가 누구의 입장에서의 발화였는지, 자신이 어느새 그것에 동화해옴으로써 또다른 가해의 일부가 되었음을 알아채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글은 일종의 자기반성일수도 있겠다.
어떤 것이 사소한 것이고 또 사소하지 않은 것인지, 그건 누가 정하고 누가 판단하는건지, 나도 또한 편안함 또는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인 무심함을 드러내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에그
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는 매년 12월, 한 해의 마지막 모임에서 시낭독을 한다. 모두가 마음에 드는 시나 책 속의 한 구절을 준비해 각자의 호흡과 온도로 전달한다. 어떤 시를 소개할까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한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황성희 시인의 …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2025년 12월 22일 월요일세상에는 오렌지만이 과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포도도 파인애플도 과일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과일도 있다고 말하는지, 왜 자신이 오렌지만을 과일로 믿게 되었는지는 궁금해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오렌지만이 과일이라는 말만 반복…
자긍심
2025년 12월 29일 월요일'자긍심'이 도대체 뭔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이연숙, 남웅의 《퀴어 미술 대담》은 예술비평을 하는 두 사람의 대담을 엮어낸 책이다. 많은 말들 중에서 남웅 비평가의 한 물음이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붙잡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프라이드를 이야기…
멘탈 아츠
2025년 12월 24일 수요일인간의 감정 중에서 '화'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도 많고 궁금한 점도 많다. 그 이유는, 감정들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감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를 잘 내는 방법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예전에, 내가 다니는 명상원 원장님께 '화'에 대한…
관계의 즐거움
2026년 1월 20일 화요일사람을 대하는 건 어렵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없어서인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사람을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어렵게 느끼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나의 망상 때문일테다. 그건 결국 노력하면 괜찮아진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