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몰, 하찮은 침전

2026. 04. 22by한도리

"여기 있는 누구나, 언젠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요?"

 

선배 하나와 친구 둘은 고개를 갸웃대거나 내저었다.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소원으로 '세계 평화'를 빈다거나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있다는 믿음이, 나는 누구에게나 언젠가 있었을 줄로만 알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러한 낭만적인 생각을 꽤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럿일 거다. 어릴 적부터 기특하다, 똑 부러진다 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혹은 영화를 즐겨보다 나도 그 주인공과 같은 삶을 지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운이 좋게도 노력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얻는 경험을 몇 차례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늘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지만 조금만 더 노력을 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멋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물론 내 믿음은 틀렸다.

 

 

 

 

 

 

어른이 된다는 말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인정한다는 의미라던데 내가 비로소 어른이 된 때가 언제쯤이었던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는 무엇도 이룰 수 없겠구나', '제너럴리스트인지 스페셜리스트인지 그 사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하는 넋두리를 속으로 삭인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자연스레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슬쩍 만진다. 수없이 많은 사진과 끝없이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에 시선을 두기 바쁘다. 각자가 관심을 두거나 좋아하는 분야에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모습이 부럽다. 이번에는 페이스북을 연다. 자주 들어가지는 않지만 한때 비슷한 궤적을 그렸던 이들이 성취한 삶이 거기에 있다. 때로 준엄하고 단호하며 자기 확신에 가득 찬 글을 연달아 읽으니 질투가 난다. 나는 힘을 잃었으므로, 여기서 멈추었으므로 낙오자다.

 

그간 인생의 절반 가량을 여러 일로 끊임없이 채워왔기에, 이제는 내 속을 제대로 채울 공부와 생각이라는 걸 할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어차피 서울로부터 적어도 1.5시간은 떨어진 이곳에서 어린이집 등하원을 하려면 보통의 직장에서 보편적인 직장인의 시간표로 살아가긴 어려우니, 잠시 쉬어가며 먼 미래를 대비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더없이 귀중한 시간을 또 낭비 중이다.

 

 

 

 

 

 

우리 집 어린이는 부쩍 어리광이 늘었다. 얼마 전에는 미끄러져 넘어지더니 그냥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엄마, 엄마아“ 하며 울었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 친한 친구가 누구냐 물으니 엄마란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서 엄마랑 놀고 싶다는 말로 등원을 늦춘다. 다른 어린이들에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겠는데 우리 집 어린이는 이제야 이러네. 말이 빠르게 늘어, 생각이 여물어 그런가? 하지만 자못 ‘그간 이렇게 엄마를 찾아왔는데 내가 정신없이 일을 쳐내는 동안, 아이는 그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빼앗겼던 건 아닐까’ 자책을 한다.

 

지금이라도 이 친구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 다행이지. 대체로 별 일 없이 어린이의 웃음과 울음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즐겁다.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에는 별러왔던 수영도 배우고 미뤄둔 영화와 책도 본다. 제목으로만 익히 알던 명작을 하나 둘 찾아보며 즐긴다. 좋은 영화를 볼 때면 모든 걱정이 사소해지고 인류를, 세상을, 삶을 다시 생각한다. 그러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때때로 불안하다. 불안보다 자괴감이 크다. 이대로 주저앉는 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죽어가고만 있는 걸까.

 

 

 

 

 

 

간혹 본인상 부고를 듣는다. 아직 동년배는 적으나, 주로 일을 하며 만났던 선배들의 소식이다.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사회에 기여했는지, 온 힘을 다해 생을 살았던지 열거하며 추모한다. 과연 내가 오늘 죽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리워하는 말을 적을까?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을까? 한 때는 자부했던 것들이 이제는 희미하다.

 

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쩌면, 아니 확실히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지금에 어째서 후회, 망설임, 게으름 따위로 균열을 내느냐는 말이다. 마음먹은 일은 단호히 해내되, 하지 못하는 일을 아쉬워하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그 두 가지만 제대로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세계평화를 소망하던 어린이는 그저 그런 소시민이 되었지만, 지금 멈춘 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또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벌써 4월 22일이다.

 

(사진: 영화 <러시아 방주> 중에서)

한도리

N잡러

세 명이 한 가족, 섬에 살아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를 가장 좋아해요. 때로는 영화를, 소설을, 친구의 이야기를 걸어요.